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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인의 현장스케치] 한화생명 상담사 "우리는 당당한 커리어우먼"

까다로운 면접·체계적인 교육… 100% 여성 조직의 끈끈한 유대감

하영인 기자 기자  2015.03.18 15: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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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평소 출근시간대보다 좀 더 여유롭게 집을 나선 길.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지난 12일 한화생명서울콜센터로 향했다. '하영인의 현장스케치'를 한화생명콜센터에서 처음 시작하게 됐기 때문.

오전 8시경 발길이 닿은 한화생명 신설동 사옥은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에 인접해 출퇴근이 용이해 보였다. 건물로 들어서자 훈훈한 온기가 온몸을 둘러싼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분주한 출근길의 모습은 아니었다.
 
벽면에 붙은 사내방침을 살피는데 키가 훤칠한 한 남성이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지나간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이임에도 낯선 이가 베푼 친절함은 새로운 곳에 대해 바짝 선 경계심을 느슨하게 했다.
 
한참 후에 알게 됐지만 그는 한화생명서울콜센터(이하 한화생명콜센터) 손영호 센터장이었다. 몸에 밴 매너와 직원들을 위하는 그의 진정성은 상담사 간 가족처럼 깊은 유대감 형성에 기여했을 터. 저녁 7시 무렵까지 이어진 한화생명콜센터의 일과는 그렇게 산뜻한 만남과 함께 시작됐다.
 
◆고객이 비밀번호 누르는 순간에도 상담사 손은 천수보살
 
"앞에 있는 생수병 따고 시원한 물 한잔하세요. 오늘도 이 물처럼 시원하게 고객 응대합시다. 그럼 팔 앞으로 쭉 뻗으시고 3초간~."
 
오후 8시40분께 본격적인 업무에 앞서 상담사들이 테이블 주변에 옹기종기 한데 모여 앉았다. '호응어 핸드북'을 통한 사례연습부터 스트레칭, 집중시간대와 특이사항 안내 등 짧은 아침 조회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이어 콜센터의 핵심업무를 파악할 수 있는 '고객의 소리(VOC) 체험'이 시작됐다. 업무가 숙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객을 응대할 수는 없는 만큼 간접적으로나마 상담사 업무를 모니터링하기로 한 것이다.

한화생명은 이 같은 VOC체험을 지난 2013년 생명보험업계 처음으로 도입, 우수상담사 옆자리에 공간·설비를 마련하고 누구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클레임지급안내 파트를 포함해 △융자(신용대출) △VIP전담 △신계약 모니터링 등 총 11개 체험 존을 운영 중이며 한화생명 내부 직원들이 이를 통해 고객 불만과 요구사항을 직접 듣고 고객만족의 중요성을 인식, 민원을 예방하자는 차원이다.

이미 한화생명의 모든 임원과 팀장, 800여명의 지역단장, 지점장 등이 최소 1회 이상 체험을 마쳤고 보험설계사(FP)까지 대상을 넓혀 추진 중이다.
 
한화생명콜센터는 총 650석을 갖췄으며 서울 1·2·3팀을 비롯해 부산팀과 대전팀, 총 5개팀으로 구성된다. 자회사 한화라이프에셋과 콜센터 전문 아웃소싱기업 △이케이맨파워 △아데코코리아 △부일정보링크의 위탁 운영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고.
 
이날 부지런히 돌았지만 VOC체험 11곳 중 5개 파트만 거쳐 못내 아쉬웠다. 이 가운데 '클레임지급안내'와 '융자(신용대출)' 파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파트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지급한 보험금은 잘 받았는지, 다른 문의사항은 없는지 등을 안내하는 아웃바운드 파트라는 설명을 들으며 헤드셋을 귀에 꽂았다.
 
"안녕하세요. 한화생명 이효은입니다. 김세화(가명) 고객님이십니까? 고객님 3월11일 접수하셨던 보험금이 지급돼 안내문자를 보냈는데요. 확인되셨습니까. 혹시라도 문의사항 생기시면 1588-6363번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이효은이었습니다."
 
편안한 목소리와 침착한 응대에 대다수 고객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파트 성격상 별다른 민원 없이 평이한 대화가 오갔다. 그는 쉼 없이 30분만에 15콜가량을 성사했지만, 지친 기색 없이 다시금 번호를 누른다.
 
잠시 헤드셋을 내려놓고 교육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한화생명콜센터는 3층부터 8층까지 콜센터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오르내리며 바삐 움직여야 했다.

4층에 마련된 교육실에서는 업무내용이 바뀌거나 신규 상품 등에 대한 강의가 수시로 진행된다. 이를 참관하고자 한산한 교육실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씩 빈자리가 채워지더니 상담사 30여명이 착석했고 곧 코칭매니저의 신규 상품 강의가 시작됐다. 위트 있는 코칭매니저의 입담에 상담사들은 즐겁게 웃다가도 교육에 임할 때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 상담사는 "학창시절 이렇게 공부 열심히 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라며 "'엄마 또 공부해?'라는 말을 매일 듣는다"고 말해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다시 8층으로 돌아와 VOC체험 '융자(신용대출)' 파트에 자리했다. 올해 8년차라는 전소영 상담사는 통화상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와중에도 능숙한 손놀림을 보였다. 일반인이 웹디자이너의 프로그램 단축키 사용에 감탄하듯, 본인 업무에 몰입한 그의 전문적인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짧게 나눈 대화 중 "떨린다"며 수줍게 미소 짓던 그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모니터 작업 표시줄에는 8개에서 10개에 달하는 작업창이 항시 떠있는데, 이를 넘나들며 상담하는 그의 손끝에는 프로다운 면모가 묻어났다.
 
누가 콜센터 상담을 단순업무라고 치부했던가. 단지 모니터와 헤드셋을 갖고 눈과 귀로 따라갈 뿐인데도 업무파악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마저 계산기를 두드리고 수시로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등 매끄러운 안내를 위해 준비태세를 갖춘 모습이 인상 깊다.
 
체험석에 비치된 방명록을 펴보니 상담사들의 전문성을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글 일색이다. 필자도 빼먹지 않고 펜을 들었다. 엉성한 글씨로 VOC체험석마다 참여 후기를 작성했다.
 
◆"맘 약한 상담사? 동정 대상 아닌 당당한 전문가"
 
한화생명콜센터 상담사 중 절반은 기혼으로 알뜰살뜰 도시락을 싸와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많다. 업무를 떠나 소소한 일상을 털어 놓으며 동료애를 더욱 끈끈히 다지곤 한다.
 
"오늘 화이트데이 기념문자이벤트 진행했는데 답변이 너무 웃겨." "우리 남편이 글쎄~." "어머, 좋겠다."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점심시간. 업계에 대한 그들의 고민도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10여년 경력을 쌓아온 각 파트장들은 그간의 생각들을 털어놨다.
 
"상담사들을 동정받아야 할 감정노동자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자 전문가로 자부하는데 그런 시선은 업계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타 회사 이직률은 5~10%에 달하지만 한화생명콜센터는 1%대에요. 면접과 교육이 체계적이고 까다로운 점도 한몫하죠. 업무만족도가 높으니 친동생이나 지인에게 입사를 권하는 경우도 많아요."
 
다른 이도 그에 공감하며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닌데 사람들은 그저 목소리 예쁘고 상냥하면 되는 줄 알고 있다"고 한탄했다. 인터넷 발달로 고객의 기본 지식수준이 높아진 만큼 상담사는 그보다 더 많은 정보를 숙지하고 도움을 주고자 밤낮으로 열성이지만 사회인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

억울할 만도 했다. 단시간 지켜봤을 뿐이지만 어중간한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고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업무임을 알 수 있었다. 고객 요구도 다양했다. 고객은 모든 상황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원했고 본인을 확실히 이해시키길 바랐다.

지식은 물론 돌발상황에서의 순발력, 임기응변 등 원활한 소통은 기본소양일 뿐이다. 실제로 대화를 나눠본 상담사마다 조리 있는 말과 끝맺음 등 탁월한 어휘구사력을 자랑했다.
 

한화생명콜센터 상담사들은 대부분 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으로 내년이면 15년차인 이도 있다. 이들 역시 똑같이 상처받는 사람이지만, 바로 바로 치유하는 재생력도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각자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으며 이로 다시 힘을 내 업무를 잇곤 한다고.
 
무엇보다 공감하고 서로 위로 받을 수 있는 동료들과의 대화가 큰 힘이 된다. 이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가족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체험 마지막 순서로 김은숙 파트장, 조문숙 코칭매니저, 전소영 상담사와 허심탄회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민원 대처방법에 대해 묻자 전소영 상담사는 "신입 때는 많이 당황했었지만, 근무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응대 스킬이 생기고 VOC제도가 있어서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기 때문에 상담사들이 많은 부담을 덜고 있다"고 제언했다.
 
김은숙 파트장은 "본인이 알고 있으면서 상담사를 테스트하기도 하고, 잘못 안내했으니 보상해달라는 등 곤혹스럽게 하는 고객도 있다"며 "상담사에게 교육일지를 보내라, 반성문을 보내라고 한다"고 애석함을 표했다.
 
여기 더해 "그렇지만 감사하다고 책을 보내준다거나 직접 찾아와 장갑을 선물해주는 고객도 있다"며 "몸이 아픈 상담사를 위해 약과 편지를 보내와 감동을 주는 고객도 있기에 보람이 있다"고 말을 보탰다.
 
조문숙 코칭매니저는 인천 사는 고객이 '인천 오면 꼭 연락해라, 소래포구 다 내꺼다'라며 연락처를 남겨주기도 했다며 "힘들다가도 이 같은 고객들 편지에 '이런 맛에 일하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고 밝게 미소 지었다.
 

추신 :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하며 깊은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나눴습니다. 그만큼 쾌활하고 매력적인 분들이 많았는데요. 콜센터 상담사분들이 약자가 아니라 내적으로 진정한 강자임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더 당당하고 멋지게 발전할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