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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이제는 대세 '초성체', 사용 한계는?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3.12 10: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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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조형물입니다. 입꼬리가 올라가 웃는 모습처럼 형상화한 것인데, 거기에 더해 흔히 웃음을 나타내는 '초성체' ㅎㅎㅎ를 연이어 붙 이는 방식으로 입 모양을 만들어 냄으로써 한층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초성체란 한글자모가 결합해 글자를 만드는 일반적 방식에서 벗어나, 초성만을 따 쓴 단어, 또는 그 형식으로 소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터넷상에서 자주 사용되지요.

처음에는 웃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즉, 'ㅋㅋ,ㅎㅎㅎ' 등에서 간단한 단어를 초성으로만 표기해 소통하는 것으로 확장됐습니다. 'ㅈㅅ'(죄송)이나 'ㄱㅅ'(감사) 같은 경우가 여기 해당합니다.

이 같은 초성체는 맞춤법을 파괴한 기존 통신어와 마찬가지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용 금지 대상인데요. 다만 널리 확장되고 있어서 이 같은 저항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속어처럼, 격식을 차리는 경우나 공식문서 등에만 사용을 자제하고 보통 통신이나 생활상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되는 쪽으로 정리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초성체는 인터넷 문화가 태동한 PC통신의 시대 이후에 확산했다는 것이 정설인데요. 하지만 탄생만 놓고 본다면 이 같은 온라인 세상과 별도로 꽤 오래됐다고 합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초성체 사용 사례는 소설. 특히나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끕니다. 전상국 작가가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동행'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는데, 이 작품 말미에 'ㅎㅎㅎㅎㅎㅎ'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나중에 작가가 설명하기를, 기존의 '하하하'라는 의성어가 식상하고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너무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 같아서 어색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하는데요. 읽는 방법은 독자가 상상하는 대로, 흐흐흐 읽을 수도 있고 흐흐허허 등으로 읽어도 된다고 합니다.

한편 이 같은 이상한 표현을 접한 당시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해 "흠잡을 데 없는 꼬장꼬장한 문장"이라거나 "단숨에 읽을 수 있게 끌고 나간 솜씨"라면서 격찬을 한 심사평이 남아 있습니다. 이때 심사에 나선 선배 작가들은 역사소설로 특히 유명한('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 같은 유명 드라마의 원작을 남긴) 월탄 박종화 등 쟁쟁한 한국 대표문인들이었으니, 격식파괴 초성체가 (일부) 사용됐다고 해서 좋은 글의 흐름이 갖는 힘이나 문장의 미학이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결국 초성체를 쓰고 안 쓰고의 문제는 거기 담긴 내용이 있는가 초성체를 쓰면서도 내용과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그런 확장된 고민으로 연결이 돼야 할 것 같은데요. 초성체가 가진 추상적인 개념을 자유롭고 은근히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을 살린다면 사용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할 것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