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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불어터진 국수, 삶지 못한 국수, 덜 익은 국수

이금미 기자 기자  2015.02.26 15: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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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를 얘기하면서 나온 '국수' 비유가 아직까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경제를 생각하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3법도 지난해 어렵게 통과됐는데 비유하자면 퉁퉁 불어터진 국수였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걸 먹고도 경제가 힘을 냈는데,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느냐"고 반문했죠.

박 대통령은 1년 전 정부 업무보고 때도 국수 발언을 했었습니다. 정부 제출 법안에 대해 "300일을 묵히고 다 퉁퉁 불어터진 국수 같이 이거는 시행이 돼도 별로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박 대통령에게 '퉁퉁 불어터진 국수'는 국회의 법안 '늑장 처리'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인 셈이죠.

이에 야당의 반발이 거셉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야당의 협력을 폄하하고 남 탓으로 돌리는 이런 모습 때문에 국민이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불통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반박했고요.

정세균 의원은 "국민이 먹어도 되는 국수인지 따져야지 왜 퉁퉁 불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느냐"고 했고, 윤호중 의원은 "국수 다 불려놓고 남 탓 하는, 또 한 번의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도 "국수도 못 먹고 국수값만 내는 서민이 불쌍하다"며 거들고 나섰습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전해집니다. 원조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이혜훈 전 의원은 "부동산 3법이 경제를 살리는 묘약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라고 운을 뗀 후,

"건설경기가 전체 경기를 끌고 가는 그런 시대는 이미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본다. 반면에 부동산 3법은 앞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는 법"이라고 했는데요.

특히 이 전 의원의 발언은 그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출신으로 대표적인 새누리당의 '경제통'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모으고 있죠.

26일 열린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도 국수 관련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당장 필요한 일은 불어터진 국수가 아니라 '아직 삶지 못한 국수', 즉 경제활성화를 위한 11개 법안을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언주 새정치연합 의원은 "최전방에서 경제를 이끌고 가야 할 대통령의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지면서 우리 경제는 퉁퉁 불어터진 국수가 아니라 '삶다가 만 덜 익은 국수'가 돼 먹을 수조차 없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렇듯 박 대통령이 쉬운 말로 소통하고자 쓰는 표현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고, 빌미를 제공하는 듯한 모양새인데요. 정치권 호사가들은 박 대통령이 국수에 집착(?)하는 원인을 아버지시대의 분식장려운동에서 찾는 등 우스개를 부리곤 합니다.

얼핏 보면 말장난으로 비칩니다만, 정치권이 박 대통령의 국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의 말은 국민을 설득하고, 이를 통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얻기 때문이죠. 말로 국민을 설득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오늘날의 대통령직에 요구된다고나 할까요. 이 때문에 서구에서는 대통령의 수사학(rhetoric)이라는 학문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무튼, 박 대통령은 취임 뒤 그 근엄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진돗개, 단두대, 암 덩어리, 원수 등 심장을 자극하는 강력한 표현을 선보였는데요. 이번 불어터진 국수 표현은 여진이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수에 담긴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국민 정서에 닿기도 전에 야당의 반론과 저항이 이어지고 여당 내부조차 설득이 이뤄지지 않아서죠. 

그나저나 박 대통령이 국수 한 그릇에 어떤 철학과 비전을 담았는지, 청와대 실세인 진돗개는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