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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2.0 탐방 38] '대한민국조종사협동조합'의 솔직담백스토리

600명 시작 함께 해 일산 '파일럿 클럽 하우스' 마련, 미흡한 부분 메우며 날로 발전

나원재 기자 기자  2015.02.16 17: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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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쌓이는 경험은 희망의 무게를 늘리고 있었다. 을미년 봄을 알린 날 '대한민국조종사협동조합'을 만나고 돌아선 길. 1년하고도 반년이 더 쌓인 시간은 보다 체계적인 협동조합의 모습을 갖추는 데 소진됐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향후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예비 협동조합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탓에 솔직 담백했던 여운은 다시 만나 떠올리기로 한 그날의 얘기를 되새겼다.

노동자가 회사에 속해 회사 임금만 받는 구조에서 벗어나 직접 기업을 만들고 활동을 하면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선 무난해 보이지만, 구성원들만 보면 독특한 협동조합 콘셉트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주축이 돼 2013년 8월 설립한 '대한민국조종사협동조합(이하 조종사협동조합)'은 현재 아시아나항공과 해외서 근무 중인 조종사, 외항사까지 구성원도 다양하다.

조종사협동조합의 시작은 설 자리가 좁아진 노동자들을 위한 대안 경제가 바탕이 됐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굉장히 위축된 우리나라는 경제구조상 회사의 규모나 힘이 노조와 노동자의 힘과는 월등히 차이를 보이며 회사 위주로 돌아가는 만큼 주목했다는 얘기다.

그 무렵엔 협동조합 특별법이 통과됐고 지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대안 경제가 마침 주목을 받던 시기이기도 하다.

◆좋은 품질의 '하우스 맥주'는 큰 자랑거리, 고민은…

그렇게 약 600명이 첫 시작을 함께 했다. 1인당 30만원씩 출자했고 일부는 100만원을, 제일 많게는 1000만원까지 출자한 조합원도 있다. 같은 해 10월 경기도 일산에 오픈한 수제맥주 전문점 '파일럿 클럽 하우스(PCH)'는 첫 결과물이다.

PCH에는 다양한 주류가 갖춰졌지만 품질 좋고 저렴한 '하우스 맥주'가 가장 큰 자랑거리다. 맥주는 일산 지역에 있는 작은 양조장에서 구입해 원가에 가깝게 판매되고 있다. 내부에 화질 좋은 150인치 스크린이 있어 영화도 볼 수 있는 이곳을 중심으로 각종 활동과 다양한 모임도 진행 중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하우스라 사교나 만남의 장소, 소통의 장소로 활용하면서 각종 공연이나 강좌를 통해 수익을 내고 조합원과 지역민들이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조종사협동조합에 따르면 일산은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며 PCH는 그들이 모일 수 있는 알찬 공간이다.

때로는 조종사 동아리 활동공간이 되고 때로는 강연이 열리기도 하며, 사회공헌활동의 장이 되는 이곳은 퇴직 기장부터 조합원들의 가족까지 참여해 친목을 도모하면서 훈훈한 시간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다.

처음부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강좌와 강연 및 공연 등을 펼쳐왔지만, 지역사회와의 스킨십은 이후 벌어진 또 다른 큰 변화다. 이들과 연계한 강연이라든지 음악회나 지역의원 포럼 등이 열리기도 하며, 같은 지역에 위치한 지혜공유협동조합에서 일부 강좌도 전개된다.

현재 이런 움직임이 다른 단체나 취지에 공감하는 지역민들의 참여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는 게 조종사협동조합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다만, 아직까진 만족할 수준이 아니라는 게 이들 스스로의 분석이다. 사회적 역할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협동조합이 기업의 한 형태라는 것을 처음부터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는 부연이다.

◆값비싼 수업료 지불한 만큼 '지역 명소' 탈바꿈 기대

같은 맥락으로 잉여금이 생기면 PCH에서 일하는 일반 직원과 출자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재투자에 활용되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잉여금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다.

김종오 조종사협동조합 이사장은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 인건비가 계속 나가야 되니 매출에 의한 판매이익이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해 마이너스"라며 "마음이 아픈 건 처음 PCH에 정규직 2명을 채용하고 아르바이트도 다른 곳보다 급여를 많이 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주방 담당하는 두 분이 번갈아 가면서 일하고 매니저가 한 분 있지만, 이들도 일종의 계약 형식으로 일하고 있다"며 "우선 수지균형을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급여를 주기로 하고, 매출이 늘어나는 부분에 대해 돌려드리기로 약속했다"고 첨언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경험 없는 사람들이 시작한 사실이 제일 큰 경험으로, 인테리어부터 제품 판매와 인력관리 등에 미숙해 배우는 데 수업료는 많이 들었다. 그러나, 값비싼 수업료를 내왔던 만큼 이제는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대목이다.

김 이사장은 "PCH는 장소도 좋고, 제공하는 맥주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수준의 품질이면서도 낮은 가격을 자신한다"며 "여기서 하는 각종 활동, 모임은 이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명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PCH는 조종사협동조합의 첫 번째 사업 아이템일 뿐 최종 목표는 아니라는 것. 여기서 노하우를 쌓으면 조종사들이 만든 만큼 항공업계에 본보기가 될 기업의 모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조합원들의 기대가 묻어있다는 역설이다.

지금 사업이 아니면 다음 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만큼 PCH의 성공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큰 그림이나 거창한 생각은 후배들의 몫이고, 지금 하는 작은 일이라도 알찬 결실을 보면서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각오다.

이런 그는 "조합이 우리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려면 생산자협동조합이 많이 생겨야 한다"며 "경쟁이 치열하고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고수익 아이템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는 예비협동조합을 겨냥한 아낌없는 조언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