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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상아탑의 비명 "문사철,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 루저"

[청춘절망보고서 ②] 주거‧등록금‧학점‧스펙쌓기 '첩첩산중'

강다솔 기자 기자  2015.02.11 16: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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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얼마 전 이공계 기피현상이 이슈 중심에 섰었으나 이제는 '문사철(문학·사학·철학계열)'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의 애환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체감하고자 어떻게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지 먼저 서울 K대 국문과를 재학 중인 H군(25)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현재 서울에 자취 중인 H군은 강원도에서 통학하다가 취업준비를 하고자 부모님을 설득해 어렵게 원룸을 마련했다. H군은 전공과목이 적성에 맞아 배우는 것은 즐거웠지만, IT‧제조‧중공업 등 전문기술을 요구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은 현실에서 막상 자신의 전공을 살릴 자리가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H군은 "출판‧금융‧교육‧언론‧홍보‧비정부기구(NGO) 등 찾아보면 문사철 학생들도 전공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일반기업들은 다른 과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문사철 학생들을 잘 안 뽑으려고 한다"며 "결국 자기 전공 외에도 다른 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다른 과에 비해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질 일자리 늘어났으면…"

기업의 이공계 우대현상에 대해 대다수 인문계열 취준생들은 노동수요시장 원리상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당장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전공이 아닌 기초과학은 어려움을 겪는 등 우대 계열이 편중돼 이공계가 취업 우선순위는 아닌 셈이다. 

H군은 "기업에서도 기초학문들은 장기적 전략을 갖고 투자를 많이 해야 하다 보니 당장 쓸 수 있는 전공을 우대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또 "취업 잘 되는 학과들도 따지고 보면 기초학문을 뿌리로 두고 있는데, 문사철을 비롯해서 기초과학마저 홀대한다면 결국 나라의 '성장동력'을 잃을 것 같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여기 더해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약 300만원의 등록금과 매달 90만원가량의 월세‧생활비, 그리고 토익‧자격증 등 취업 준비비까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이 계속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함을 털어놨다. 

H군은 인터뷰 말미 "요즘 학점 취득과 취업 준비, 생활비 마련까지 취업 삼중고에 밤잠을 설친다"며 "개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인문계열 학생의 전공을 잘 살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안정성 최우선…해답은 '공무원'

현재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S군(25)은 '직업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요즘에 인문계열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문사철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은 한정됐고 정년 안정성이나 월급도 낮은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준비 방법마저 모호한 경우가 많죠. 그러니 비교적 길도 잘 닦여있고 정년도 보장된 공무원은 문사철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더불어 S군은 "문제는 공무원시험 준비비용"이라며 "나는 그나마 학교와 공무원학원이 연계해 제공하는 인강(인터넷강의)을 이용해 비용을 줄이지만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학원비, 고시원비, 생활비 등 한 달에 100만원 넘게 돈을 쓴다"고 첨언했다.

이와 함께 S군은 "현재 상황을 개선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기존의 강소기업들을 널리 알리고 전공을 잘 살릴 수 있는 중소기업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정성이 보장되는 기업이 늘어나 부족한 노동수요를 채운다면, 과도하게 늘어나는 공무원시험 준비생 비율도 줄이고 취업 미스매칭도 어느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취업관문 넘어설 왕도는 적극적인 준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 사립대 L모 교수는 문사철 학생들이 취업에서 고전하는 이유로 '학생들의 취업정보 수집 및 활용 부족'을 들었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취업에 대한 고민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준비를 못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취업하기로 결정했으면 기업에 대한 정보를 찾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취업 상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망설이는 학생들이 많아 안타깝다는 한탄이다.


L교수는 "이런 학생들이 많은 이유는 어디서 취업정보를 찾아야 할지 잘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학생들이 전공과 취업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대학교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취업보다 '학문탐구'이므로 학생들이 지나치게 취업에 매달리지 말고 학업에도 충실했으면 좋겠다"며 "대학교가 기업과 나라에 휘둘려 '취업양성학교'처럼 변하는 게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아울러 설을 맞아 문사철 취준생들의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문사철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사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인간관계 및 조직문화 적응에서 앞설 수 있습니다. 또 융통성을 잘 발휘하며 무엇보다 깊게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죠. 이것들은 단체생활을 하는 회사에서는 꼭 필요한 능력들이니 문사철 학생들은 자신감을 갖고 취업준비를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