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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110] 홈리스와 따뜻한 동행 '빅이슈코리아'

빅판, 거리의 중심에서 자활을 외치다…"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이보배 기자 기자  2015.01.29 20: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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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거리를 지나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외침은 "나는 홈리스입니다"와 다르지 않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일 게 분명하다. 이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홈리스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자활을 외치는 든든한 버팀목 '빅이슈코리아'와 '빅판(빅이슈 판매원)'의 따뜻한 동행을 함께 했다.

'빅이슈코리아'는 18년 동안 홈리스 자활을 지원해온 비영리민간단체 '거리의천사들'에서 시작된 사회적기업이다.

이선미 빅이슈코리아 판매팀장은 "홈리스들에게 자립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 '빅이슈'를 알게 됐고, 홈리스 분야에 오랜 노하우를 가진 거리의천사들이 한국판 빅이슈를 발행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우리는 빅판입니다"

빅이슈코리아는 거리의 천사들의 초기 자본 기부로 탄생했으며, 2010년 7월 '빅이슈' 첫 호를 발행했다. 시작부터 운이 좋았다. 사업 시작과 함께 서울형 예비사회적기업이 됐고, 3년 후 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정식 인증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국 1200개가 넘는 사회적기업 가운데 13개 서울 우수사회적기업에 선정됐다.

이 팀장은 "전문인력 인건비 지원을 받고 있는데 큰 도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빅이슈코리아가 더욱 단단해 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준다"고 말했다.

빅이슈코리아에서 발행하는 잡지 '빅이슈'는 홈리스(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줘 자활의 계기를 제공한다.

해외에서는 빅이슈를 판매하는 홈리스를 '벤더'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빅이슈 판매원'의 약칭인 '빅판'이라고 부른다. 자립의 의지가 있고, 행동수칙을 준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빅판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현재 빅이슈코리아의 빅판은 60명 정도. 빅판은 행동수칙을 따르겠다고 서약하고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뒤 정해진 장소에서 잡지를 판매하게 된다.

판매 시작일부터 2주간 임시 ID카드가 발급되는 임시 빅판으로 활동하고 2주간 꾸준한 판매활동이 이뤄진 경우 정식 ID카드가 발급된다. 이때부터 판매지역에 대한 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식 빅판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 

빅판 판매 시스템은 의외로 간단하다. 처음 빅이슈코리아를 찾은 빅판에게는 10부의 잡지가 무료로 제공된다. 권당 5000원인 빅이슈를 모두 팔면 5만원의 수익이 발생하고, 이후부터 빅판은 권당 2500원에 빅이슈를 구입해 5000원에 판매한다.

이 중 2500원이 빅판에게 돌아가는 수익으로 하루 수익 중 원하는 만큼 저축을 통해 돈을 모은다. 처음 한 달은 빅이슈코리아에서 고시원 비용을 지원해 거리 생활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후 6개월간 꾸준히 일하면서 100만원 상당의 적금을 모으면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빅이슈코리아에서 일했거나 계속 일하고 있는 판매원은 500여명. 이 가운데 30명가량이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15명은 재취업에 성공해 자립했다.

◆재능기부의 끝판왕 '빅이슈'

빅이슈라는 잡지를 접하고 놀라웠던 점은 100페이지에 달하는 잡지 한 권이 대부분 재능기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팀장은 "빅이슈코리아 편집국 소속 에디터는 5명뿐"이라며 "이들이 매호마다 잡지의 콘셉트를 잡은 후 인터뷰와 기획기사를 작성하고 나머지 모든 과정은 다양한 분야의 재능기부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편집국 내 사진부가 따로 없기 때문에 재능기부를 신청해준 작가님들에게 의뢰하고, 잡지 속 삽화나 일러스트 역시 재능기부 신청자들을 통해 그려진다.

책을 만드는 것 외에도 잡지가 나오면 전국으로 발송작업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 나와 함께 포장을 해주는 재능기부자는 물론, 거리에서 빅판의 판매를 돕는 '빅돔(빅이슈 도우미)'으로 함께 할 수도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빅이슈 표지 모델. 100호에는 헐리우드 유명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표지를 장식했고, 30일 발행되는 101호 표지에는 누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배우 여진구가 실린다. 이 밖에 지금까지 빅이슈 표지를 채운 연예인들은 송일국, 손호영, 장기하, 무한도전팀 등 매우 다양하다.

이와 관련 이 팀장은 "표지 모델은 편집국에서 직접 섭외 요청을 하기도 하지만 먼저 알고 연락해준 분들도 많다"며 "모델 역시 재능기부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모델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많은 연예인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고 제언했다.

사회적기업도 엄연한 기업인 만큼 수익 창출도 당연한 목표다. 빅이슈코리아의 가장 큰 수익원은 당연히 빅판의 빅이슈 판매수익이다. 지난해 빅이슈코리아는 잡지 판매로만 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잡지사업이다 보니 광고 수익도 있지만 아직 소액에 불과하다.

이 팀장은 "여타의 수익 사업을 진행해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수익사업보다 홈리스 인식 개선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첨언했다. 홈리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잡지 판매 수익이 늘고, 이는 빅이슈코리아의 수익창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홈리스 인식 개선사업 전개

빅이슈코리아는 다양한 '홈리스 인식 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으로 '홈리스월드컵'을 들 수 있다. 홈리스월드컵은 전 세계 60여 국가 3만여 홈리스 선수들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매년 개최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나 첼시의 드로그바 선수도 승부를 떠나 축구로 하나 되는 세상을 이뤄가는 홈리스월드컴 정신에 공감해 공식 서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빅이슈코리아는 2010년 시작과 함께 홈리스월드컵 조직위원회로부터 정식 초청을 받았고, 매년 개최되는 홈리스월드컵에 우리나라 대표로 출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빅판과 4명의 아티스트가 함께 노래를 통해 회복의 시간을 모색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합창단 '더빅하모니'를 구성했다. 여기 더해 작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홈리스들의 문학적, 예술적 소양을 깨우고 창작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민들레 프로젝트'는 3회째 전개됐다.

이 밖에도 홈리스발레단, 봄날 밴드, 더 빅드림, 수다회 등 다양한 홈리스 인식 개선사업이 진행됐거나 진행 중이다.

인터뷰 말미 이 팀장은 "선생님들이 삶의 감각을 찾아 나가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웃을 일이 없어 웃는 법을 잊었거나, 눈물 흘릴 일이 많아 눈물이 굳어 버린 빅판들이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빅이슈 판매를 통해 잊고 지냈던 삶의 감각들을 찾는 것 같다는 훈훈한 얘기다.

처음 빅이슈코리아를 찾았을 때 말 한마디 주고받는 게 어려웠던 분들이 어느새 수다쟁이가 돼 있고, 개그맨 뺨치는 유머감각과 친화력으로 다가올 때면 이 직업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지금은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임대주택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아직은 이름 석 자를 대신해 '빅판'이라 불리지만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남편'으로 불리길 희망하는 그들을 가슴속 깊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