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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심층분석 ①] "태종 신격호, 세자 즉위식만 남았다"

그룹 100년 대계 밑그림 이미 반세기 전에 완성

전지현 기자 기자  2015.01.28 14: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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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롯데그룹에 급격한 변화가 시작됐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초까지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을 모든 직위에서 해임시키면서 '일본 신동주, 한국 신동빈'이라는 오랜 경영 공식에 제동을 걸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 롯데는 당분간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롯데홀딩스 사장이 맡을 것"이라고 밝히며 일본 롯데를 경영하지 않고 당분간 한국에 집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추론하건데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눈에서 벗어난 신동주 전 부회장 대신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해로 93세를 맞은 신격호 회장은 고령임에도 아직 총괄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업무를 챙길 정도로 강한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신 총괄회장은 역사 속 조선 태종 임금과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원명교체기 혼란의 정국 속에서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했지만 이후 두 차례에 걸친 혈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을 겪었다. 이후 중앙집권 강화를 통해 강력한 왕권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이후 여러 아들에게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후계자를 정했는데 그가 바로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임금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이다. 세종 즉위 이후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대마도 정벌 등 외세 세력을 척결하는 등 후계 구도 안정화에 힘을 썼다.

바로 이런 역사적 과정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신 총괄회장과 태종의 닮은꼴이자 이후 후계구도를 예측 가능케 한다.

현대한국사에서 불멸의 신화를 창조한 신격호 명예회장과 롯데가 걸어온 길을 총 4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친족이 유독 약한 롯데, 그 이면의 법정소송

지난 12월 초 일본 언론을 통해 전해진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의 해임은 국내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난해 신 전 부회장이 롯데제과 주식을 꾸준히 매입하는 움직임으로 변화를 감지했지만, 해임이라는 극단의 조치는 누구도 상상 못했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차남 신동빈 회장 몫의 한국롯데를 넘보자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손을 쓴 것으로 보고 있고, 한편으로는 친족 경영 및 세습화가 만연화 된 한국 재벌 사회의 통념으로 봤을 때 '과연 아들을 내칠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아직까진 롯데의 움직임을 속단하긴 이르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전자의 가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신 총괄회장 과거와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19살에 일본에 건너가 45살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청년기를 일본에서 보냈다. 따라서 윗사람에게 대든 아랫사람을 결코 믿지 않고 용서하지도 않는 것이 일본 정서에 더 익숙한 인물이다.

신 총괄회장은 친족들을 별로 신임하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롯데그룹은 국내 다른 재벌에 비해 친족 세력이 약하다. 친족으로 현재 임원 반열에 올라있는 사람은 신격호의 장녀인 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두 아들인 동주·동빈 형제, 막내 딸 신유미 고문 정도로 가족에 한정됐다. 장조카인 신동인 씨는 롯데자이언츠의 구단주로 있지만 임원에서는 제외된 상태다.

이는 총 5명의 동생이 있는 신 총괄회장이 선호씨만 제외하고 철호, 춘호, 준호, 정희씨와 모두 법정 다툼을 했던 과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재산분쟁으로 1966년 둘째 철호씨, 1973년 춘호(현재 농심그룹 회장)에 이어 1996년 막내 동생 준호 씨와도 법정 소송을 벌인바 있다.

특히 신준호 씨는 1967년 롯데제과가 설립되면서 기획실장을 맡은 이래 한국 롯데 초창기부터 30여년간 그룹 실세로 활약했던 인물임에도 재산분할 관련 법정소송 이후 롯데그룹 부회장직에서 그룹 계열사인 롯데햄우유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쳐졌다. 이어 준호 부회장은 여러 계열사 법정 이사직과 롯데자이언츠 구단주직 등에서 차례로 해임된다.

당시 신준호 계열로 지목된 임직원 일부도 '물을 먹거나' 퇴사됐고 일설에는 형과의 분쟁은 준호 씨가 부인과 함께 도쿄로 가서 신격호·하츠코 부부 앞에서 무릎을 꿇는 '동생의 항복'으로 일단락되며 롯데햄우유(현 푸르밀)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韓 신동주 vs 日 신동빈, 왜 바뀌었나?

지금의 '일본 신동주, 한국 신동빈' 공식은 차남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1997년 이후부터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신동빈, 한국 신동주'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당시 롯데 그룹 내부에서는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보다는 일본 롯데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신 회장은 일본 황실과 관계된 일본 유력 기업가의 딸을 부인으로 맞는 등 '일본화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신 총괄회장 역시 첫째 부인 노순화 씨 이후 결혼한 일본 부인이자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생모인 다케모리 하츠코(竹森 初子, 신격호와 결혼 후 남편성을 따르는 일본의 제도에 따라 시게미쓰 하쓰코 重光初子로 개명)의 집안 역시 제국주의 시절 고위 관료를 지내 일본 내 상당한 입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은 1985년 6월, 도쿄에서 일본 화족(華族, 일본 제국주의 시절 귀족 가문을 일컫는 통칭)가문 출신으로 일본 굴지의 다이세이(大成)건설 오고 요시마사(淡河 義正) 부회장 둘째 딸 오고 마나미(淡河真奈美) 씨와 결혼했다. 마나미 씨는 일본 황족과 화족만 다닐 수 있는 가쿠슈인(學習院)을 졸업한 재원으로 일본 황태자비의 물망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이 때문인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10선 중의원 의원으로 1976년 12월 총리 취임) 전 수상이 중매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질 만큼 일본 정재계 인맥도 화려하다.

신동빈 회장의 결혼은 후쿠다 전 수상이 주례를 하고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대표 우익 수장)당시 현직 수상이 축사를 했으며,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현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 전 수상을 비롯한 일본 정·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초호화판 일본 전통 혼례식은 장장 7시간에 걸쳐 거행됐으며, 당시 일본 돈으로 무려 100억엔이라는 엄청난 거금을 쓸 정도로 화려했다.

신동빈 회장의 부인인 오고마나미씨의 개인이력도 눈여겨 볼만 하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 학습원 출신으로 화족이라는 집안의 배경을 바탕으로 무려 13선을 지낸 자민당 이토 소이치로(伊藤 宗一郞) 전 관방장관(우리의 국방부 장관 격)의 비서 출신으로 정치계에도 깊숙이 발을 들여 놓은 재원이다.

이토 소이치로는 훗날 1996년 6월4일 "종군 위안부는 일반적인 상행위에 불과했다"고 말한 '밝은일본·국회의원연맹' 소속 인물로 우리에게는 뼈아픈 역사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대표적 우익인사로 꼽힌다.

신동빈 회장의 일본 정계 인맥을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신 회장의 일본 롯데 경영은 한국보다 더욱 무리 없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밑그림은 50년 전부터 시작?

이들 두 형제의 국적 역시 1990년대 까지는 '일본 =신동빈, 한국 신동주'라는 구도에 설득력을 실어준다. 신 총괄회장의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씨는 한국 호적에 올라있지 않다. 신영자 롯데복지재단이사장은 물론 하츠코 부인의 소생인 1954년생인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도 신 총괄회장과 그의 별세한 부인 노순화 사이의 아들로 1955년 4월29일 아버지 신격호의 신고에 의한 한국 호적에 입적됐다.

노순화 씨는 1960년에 사망한 것으로 신고 된 신격호의 본부인으로 유일한 소생은 신영자 이사장이다. 1955년생인 신동빈 회장 역시 신격호와 노순화의 아들로서 형과 같은 날짜에 한국 호적에 등재됐으나 1996년 6월5일자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당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 총괄회장은 전통적 장자 상속의 관례에 따라 장남에게 한국 롯데를 승계시키고 일본여성과 결혼한 차남에게는 일본국적을 가지게 함으로써 일본 롯데의 후계자로서는 운신의 폭을 넓혀주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친족도 잘 믿지 않은 신 총괄회장은 장남과 차남에게 일정한 재량권을 주고 능력과 적성을 저울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신동빈 회장을 한국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바로 한국 국적을 회복하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