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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변기, 편견의 경계서 예술을 외치다

정수지 기자 기자  2015.01.23 1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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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오래 지난 얘기지만 지난 여름, 봉사활동을 위해 장호원을 찾았습니다. 산속에 자리 잡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 올라가다 보니 일렬로 세워져있는 화분(?)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화분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변기였습니다. '변기는 화장실에 있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하얀 변기와 꽃의 조화에 변기일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는데요, 상상치 못한 조합이었지만 나름 어울리는 한 쌍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변기의 화분화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람이 또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시조라 볼 수 있는 '마르쉘 뒤샹'입니다. 뒤샹하면 변기, 변기하면 뒤샹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유명한데요.

다다이즘의 선구주의자이자 미술계의 문제아로도 불리는 뒤샹은 변기 하나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으며 유명세를 떨치게 됩니다. 1917년 뉴욕의 한 상점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의 독립예술가협회가 연 전시회에 '리처드 머트'라는 가명으로 출품한 것이 화제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당장 치워버리라며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미(美)'를 죽이고 '예술의 의미'로 접근한 그의 해석으로 변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 반미학적 예술이라며 극찬을 받게 됩니다.

당시 충격적이었던 만큼 10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품으로 남았는데요, 현재 '샘'의 감정가는 36억원에 달하는 귀한 몸이라고 합니다.

뒤샹은 "예술가는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며, 예술 작품은 그 영혼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는 '샘'의 영혼과 자신을 동격으로 놓으며 말했던 명대사라고 하네요.

이 같은 뒤샹의 예술 활동은 향후 아방가르드 예술, 개념주의 예술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2004년 500명의 미술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를 제치고 '샘'이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매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편견에서 벗어난 그의 예술에 대한 도전의식이 미술계의 엄청난 변화에 시초가 됐다는 점은 박수 받아 마땅한 것 같은데요, 이처럼 예술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잣대도 아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