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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乙' 같은 '甲'이 되자

가재산 피플스그룹 대표 기자  2015.01.23 1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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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요즘 매스컴은 갑질논란에 시끄럽고, 갑의 횡포에 대한 사건이나 문제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급기야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전체가 큰 충격과 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갑과 을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상황에 따라 늘 바뀔 수 있는데, 사실은 갑과 을이 입장을 거꾸로 바꿔 행동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필자는 인사제도 컨설팅을 10년 넘게 해오면서 7년 전 만났던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님을 잊을 수 없다. 당시 3조원이 채 되지 않았던 그룹 매출이었지만 지금은 5조원 규모로 급성장했고 최근에는 2조원대의 해운회사를 추가로 인수했다.

하림그룹은 닭, 오리, 돼지 같은 가축을 키우는 농장은 물론 가공공장, 그리고 홈쇼핑을 비롯한 유통시장까지 소위 '3장(三場)'을 계열화해 승승장구하는 그룹이다.

원래 컨설팅회사는 회사의 규모나 전문성에 관계없이 완전한 을이다. 그런데 김 회장님은 언제나 우리를 갑처럼 대해 주셨다. 우리가 보고회를 하거나 설명회를 할 때면 모든 계열사 사장님이나 임원들한테 늘 이런 식으로 시작 전에 한마디 던지고 시작했다.

"여러분! 오늘은 컨설팅 회사에서 오신 분들이 선생님이십니다. 우리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중간에 자리를 비우거나, 좀 안다고 다른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 한마디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우리들은 갑이 되고 반대로 갑이라고 생각했던 회장님 이하 사장단, 임원들이 을로 변한다.

이때마다 우리들은 몸 둘 바를 몰라 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하면 더 일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섰고, 무언가 제대로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계속 회장님은 물론 담당자들까지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당신은 '갑(甲)'인가 '을(乙)'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갑'이 되고자 한다. 모두들 갑의 삶을 꿈꾸지만, 사실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갑'이자 '을'이다.

누구나 갑이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을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의 사장도 갑처럼 보이지만 소비자 앞에서는 한순간에 '을'이 되며, 회사내에서 제일 말단 직원일지라도 하청업체 앞에서는 '갑'이 된다.

비록 을일지라도 자신을 낮추고 갑을 높이는 일, 자신을 버리고 갑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굴욕'이 아니라 '전략'이라고 말한다. 결국 갑과 을 함께 동행(同行)하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고, 또 성공하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강력한 갑이 반드시 강한 갑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고, 오히려 그 반대일 확률이 더 높다. 요즘의 을은 과거와 달리 갑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지금 힘이 있다고 거드름 피우는 갑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을(乙) 같은 갑(甲)이 되라!'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힘 있는 갑'으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으로 잘못 평가받고 있다.

그의 진심을 몰라주는 세상 사람들이 누명을 씌워 그를 '악의 교사'로 몰아붙였다. 그의 심오한 사상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군주론을 본래의 깊은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처세술로 둔갑시킨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착한 심성을 가진 선량한 사람이며 거의 평생을 을로 살았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을 품에 안으며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격려하던 약자들의 진정한 수호성자였다.

다시 말하면 '강자들에게는 을 같은 갑이 되고, 을에게는 강자의 틈 속에서 처절하게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회사나 조직에서도 직원들이 반대로 '갑(甲) 같은 을(乙)의 정신'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성공한 전문 경영인들은 대부분 회사생활을 '주인 같은 머슴'으로 일한 사람들이요, 최고의 갑의 위치에 가까이 오른 사람들이다.
 
머슴(을)이 주인(갑)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머슴은 누구인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요 고민과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머슴들에게 오늘은 있을지언정 내일은 없고, 이러한 사람들은 평생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종신형'에 처해진다.

반면에 '내가 이 일의 최고 책임자다. 열심히 해서 나와 회사가 같이 성장해보자'라고 주인의식을 갖고 일에 도전하며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주인 같은 머슴'은 을이 지닐 최고의 생존방식이자 갑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임에 틀림없다.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동행이인'이란 말은 순례자가 쓰는 갓이나 겉에 입는 홑옷에 '동행이인'이라는 글자가 검은 먹으로 적힌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 순례란 일본 불교를 세상에 알린 고보다이시(弘法大師)가 1200년 전 시코쿠(四國) 해안가를 따라 수행하면서 연을 맺은 곳에 88개 사찰이 잇따라 들어섰고, 사람들이 이 사찰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1200㎞를 걷는 장거리 순례를 말한다.

결국 고보다이시와 함께 걷는 순례를 체험한 사람은 순례를 마친 뒤에도 고보다이시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이란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평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무리 먼 길이라도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같이 동행해준다면 힘들이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다.

이제는 기업들도 차별화된 접근방식으로 기업의 가치를 높이되 협력회사는 물론 구성원과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해야만 생존을 넘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때가 됐다.

요즘 을의 반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갑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과 채찍만으로 해결되지는 못한다. 영원히 평행선을 그리는 철도의 궤도처럼 이분법(二分法)적 접근은 신뢰를 무너트려 도리어 파이를 망가뜨리거나 파이의 크기를 축소시켜 서로 득이 되지 못한다. 지금이야말로 더불어 함께 하는 동행이인(同行二人)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