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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생' 오 차장이 만약 재벌총수라면?

드라마 속 결단, 업무상 배임죄로 구속감

이우갑 ㈜친구 대표이사 기자  2015.01.15 09: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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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만약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를 위해 악역을 자처했던 최 전무(이경영 분)와 진정한 상사의 모습을 보여준 영업3팀 오 차장(이성민 분)이 대기업 총수였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드라마에서 최 전무는 자신의 영달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 오 차장은 계약직인 장그래(임시완 분)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중국과 5억달러 계약을 추진한다.

하지만 이 거래를 위해서는 이른바 '꽌시'(인맥을 뜻하는 중국어)라는 편법이 필요했고 결국 무리한 계약 추진 과정에서 본사 감사에 적발돼 최 전무는 비상장 자회사로 좌천, 오 차장은 사표를 쓰게 된다.

드라마에서 본사의 감사 없이 계약이 성사됐다고 가정한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극중 설정대로라면 '꽌시'로 지나친 비용이 발생해 회사는 단기적인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계약을 성사시킨 최 전무는 사장으로 승진하고 장그래는 정규직 전환에 성공하며 해피앤딩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을 우리나라 기업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보자. 최 전무나 오 차장이 한 일을 실제 대기업 총수가 나서 추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선 드라마처럼 본사 감사로 인해 5억달러 계약이 무산된 상황이라면 총수는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편법을 동원하려는 시도 때문에 진행 중인 다른 중국 사업들을 무산시켜 회사에 5000억원이란 잠정적 손실을 끼쳤기 때문이다.

계약이 성사됐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등이 대기업 총수를 검찰에 고발할 경우 총수는 업무상 배임 혐의는 물론 편법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비자금이 문제가 돼 횡령과 외환관리법 위반 등 가중 처벌받을 수 있다.

업무상 배임죄는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기업 등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처벌한다는 규정이며 상당수 대기업 총수들을 영어의 몸으로 만든 법이기도 하다. 흔히 사업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이란 말이 있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순간 물려 죽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도 쉽게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기업 대표들은 회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어려운 경영 판단을 내리며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운영한다.

일반 샐러리맨이 고의든 아니든 업무상 과실로 회사에 커다란 손실을 끼쳤을 경우 최 전무나 오 차장처럼 좌천되거나 직장을 그만두면 된다.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최악의 경우 손해배상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이 기업인처럼 형사 처벌을 받고 감옥까지 가야 한다면 누가 직장을 다니겠는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공무를 집행하는데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한다면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게 뻔하다.

치킨집 사장이 손해를 감수하고 생닭 구입처를 자기 처남 가게로 정했다고 감옥에 간다면 누가 자영업을 하겠는가? 전업주부가 부를 늘리기 위해 제도권 금융이 아닌 계를 했다 망했다고 쇠고랑을 찬다면 얼마나 웃긴 일인가? 이 웃긴 일이 유독 기업인들에게만 일어난다는데 문제가 있다.

기업 대표가 경영상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업무상 배임죄가 있는 독일과 일본도 경영상 판단에 한해서는 처벌을 배제한다. 미국처럼 업무상 배임을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다루는 것만으로 충분함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형사 처벌을 감행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나타난 재벌 총수를 대역 죄인마냥 조롱하고 비웃는다. 심지어 살인범과 같은 흉악범도 받는 가석방, 사면을 대기업 총수만은 유달리 예외로 한다.

드라마에서 최 전무는 "모두가 땅을 볼 수밖에 없을 때 구름 넘어 별을 보려는 사람이 임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기업 총수는 발을 굳게 땅에 딛고서도 별을 볼 수 있는 거인(巨人)이다. 수천, 수만의 장그래를 위해 내리는 거인의 경영상 판단을 법률적 잣대로 재단하고 나아가 형사 처벌로 단죄하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우갑 ㈜친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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