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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나·외환은행 뜸들이자

나원재 기자 기자  2015.01.14 17: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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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무엇보다 뜸들임이 가장 중요하다. 볶음이나 조림 등의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인다면 간이 깊숙이 배어 보다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뜸들이기는 보통 쉬거나 여유를 갖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한다. 때에 따라 다소 조바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잠시 간과했던 부분은 금세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다툼이 있어도 한 걸음 물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분명 의미 있는 뜸들임이 될지도 모른다.

금융업계서 한 지붕 아래 두 식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고 있다. 남들 입에선 "싸우다 정(情) 들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새나오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두고 노사 양측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수차례 논의를 펼쳤지만, 양측의 각기 다른 요구안과 입장 차이는 여전하다.

이렇듯 답답함만 더해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각의 설레발도 어느새 따라붙어 한때 조기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이는 오보가 되고 말았다. 결국 통합논의 과정은 '대화기구 발족 합의문' 없이 본 협상에 바로 들어가게 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외환은행지부는 지난 13일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통합여부와 통합 원칙, 인사원칙 등 본질적인 사항을 두고 본 협상을 제안한 은행에 공감과 환영의 뜻을 즉각 표하고 답신을 송부했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당초 본 협상에 필요한 시간은 60여일로 제안됐지만, 김 은행장은 60일이 아닌, 이달 안에 새로운 합의서를 체결해 협상을 끝내도록 하자고 맞장구를 쳤다.

2~3주 내로 노조와 협상을 끝내겠다는 의중이 다분히 묻어난 대목으로, 노조는 이를 두고 보다 진정성 있는 협상 자세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를 담보하듯 노조위원장은 노사 간 모든 협상과정은 감독당국과 근로자, 고객 등 이해관계자들이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공개하고, 2·17합의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서가 체결될 때까지 일방적인 합병예비인가 신청 등은 없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같은 날 하나금융 측에서는 노조와의 대화와 예비인가 신청 등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얘기와 하루 뒤 금융위에서 오는 28일 금융위 정례회의를 열어 예비인가를 승인할 것이라 발언이 나오면서 어렵게 마련된 자리가 파행으로 치닫지는 않을지 근심만 늘고 있다.

앞서 전해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발언도 이러한 분위기를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심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노조는 14일 본 협상 1차 회의에서 기간 중 합병예비인가신청은 신의를 깨는 행위로 절대 불가하다는 점을 피력하고, 분위기를 흐리는 관계자들의 문책과 내주로 예정된 '통합 타당성'에 관한 전문가 공개토론회 일정과 방식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왕에 두 은행 합병기일인 3월1일까지 노사는 뜸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보다 공평하고 옳은 방법이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도 있다. 보다 멀리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조속한 통합보다 안정적인 조직을 선택하는 게 분명 이득일 공산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