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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감정적 여론, 악순환 끊을 때

이종엽 편집부국장 기자  2015.01.06 14: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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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2014년에 겪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채 맞는 새해라 희망차다는 느낌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세월호 참사,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인재사고로 수많은 생명을 잃으면서 국민들은 극심한 슬픔에 잠겼다. 재발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뒤따랐음에도 사회 안전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실한 안전관리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이런 황당한 사고의 밑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늘 불안하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이 흥분하고, 나라 전체가 시끄럽다. 사법당국도 여론 살피기에 갈수록 민감한 듯하다. 사고 원인자에 대한 여론 폭행 또한 경쟁하듯 벌어지고 여기에 언론은 신이 난 듯 자극적인 논리로 시청률 끌어올리기에 열중한다.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사건·사고의 주인공을 거리로 끄집어 내 돌이라도 던질 기세다. 마치 '마녀사냥 축제' 같다. 

충분히 그럴 만 하기 때문에 대중이 격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돌을 던지기 전에, 혹은 돌을 이미 던졌다면, 돌을 손에 쥐었던 우리 스스로를 한번쯤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우리 사회에선 잔인한 무시 속에서 홀로 죽어가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콜센터 직원이 목을 매 자살하는가 하면, 주민들로부터 모멸감을 받아오던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자살하는 등의 참혹한 사건도 있었다. 분명히 지금 오늘 이 시간에도 벌어질 수 있는 참담한 일이지만, 사고 원인자는 불분명하다. 불특정 다수인 바로 우리가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사고 원인이 사회 안전시스템으로 쏠리면서 여론은 정부와 정치권까지 싸잡아 비난하며 꽤 오랫동안 흥분했지만, '감정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슬픔과 분노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 것 같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혹은 사회적 '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간혹 이들로 하여금 한없는 낙담을 하게 만들고, 심한 경우 자살충동까지 갖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배려 없는 태도, 무시하는 언행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어쩌면 우리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불거졌을 때 전 국민은 혼연일체가 돼 조 전 부사장을 질타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이 이렇게 하나가 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대단한 단합이었다.

대한항공 내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직원을 꾸짖는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이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촉발된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조 전 부사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급기야 구속까지 됐다. 이젠 법적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 그녀가 저지른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냉철해야 할 사법 당국까지 '마녀사냥 축제'에 덩달아 뛰어든 것 같아 아쉽고 우려스럽다.  

조 전 부사장의 인권은 둘째라 치더라도,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적음에도 사전구속영장 청구에서 구속까지, 사법 당국이 여론에 밀려 오버한 측면도 있다는 일부 법조계 지적은 새겨들을 만 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불같은 감정적 여론이 반응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법적 조치가 취해졌을까.   

앞서 언급한 감정노동자 사례를 떠올려 보자. 자살을 결심한 콜센터 직원과 아파트 경비원의 심적 상태가 어땠을지 짐작해본다.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인격적 모멸감을 받은 그 사무장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그 콜센터 직원과 경비원의 평상시 심리상태를 필자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오는 일상적·반복적 모멸감이 이들을 극단적 판단으로 몰아갔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 전 부사장에게 취했던 사법당국의 태도를 '감정노동자 사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모멸감에 죽어가는 잔혹한 사건이 진행 중임에도 여론이 그리 뜨겁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사법 당국은, 그리고 여론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폭행에 무덤덤한 것 같다.

여론과 언론이, 그리고 사법 당국이 조현아 사건에 쏟았던 '열성'의 10분의 1만이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상적 폭행에 보인다면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 전 부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은연 중에 여러 사회적 약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지나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래상 갑과 을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고객과 서비스종사자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공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기업 사주와 노동자 등 수 많은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자에 대한 폭행을 줄여야 한다.     

'사회적 배려'는 성숙된 시민사회의 중대한 전제조건이다. 새해에 다시 잡는 수많은 다짐들 중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 언행', '배려하는 자세' 이 두 가지는 꼭 포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종엽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