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jt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으로 유명세를 떨친 영화평론가 겸 방송인 허지웅씨가 지난 25일 한겨레를 통해 한 좌담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진중권·허지웅·정유민의 2014 욕 나오는 사건·사고 총정리'라는 제목의 좌담 기사에서 허씨는 "머리를 잘 썼어요. 어른 세대가 공동의 반성이 없는 게 영화 '명량' 수준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라고 말했다.
특히 '토가 나온다'라는 과격한 표현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의 이념가치를 '정신 승리하는 사회'로 깎아내린 것을 두고 인터넷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튿날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발언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진 교수는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길래. 하여튼 우익 성감대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긴 있나 봅니다"고 언급했다.
그들의 '국제시장' 평론을 보면서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남이 3년 동안 공들여 쓴 논문을 내게 가져와라! 나는 그것을 단 3시간 만에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필자가 대학연구소에 재직할 때 들었던 비평가에 대한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다.
과거 한 유명한 야구 해설가가 실제 감독직을 맡고 성적 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물러난 일이 있었다. 그만큼 남 훈수 두는 것과 실제 플레이어로 참가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남이 땀으로 일궈낸 성과물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필자도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 우선 관객층이 젊다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젊은 층에게 진부하게 느껴질 만한 전통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영화에 젊은 세대가 모여들고 열광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영화의 완성도였다. 흔히 보수적인 가치를 담은 영화들이 흥행에 번번이 실패한 것은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즉 재미와 감동이 적으니 아무리 훌륭한 가치를 담고 있어도 관객이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달랐다.
마지막으로는 흥행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을 포기한 윤제균 감독의 결단이었다. 역대 흥행 한국영화를 분석해보면 '반미'와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을 유행처럼 내포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미군 또는 미국 정부를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북한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마케팅 차원에서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경제개발을 폄훼해야 소위 '의식 있는' 예술인인양 대접받는 게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었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국제시장'에 대한 평판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당연히 진보적 성향의 누리꾼들은 '국제시장'을 쓰레기 취급하고 있다. 반면 영화를 본 다수는 감동의 눈물을 쏟았고 영화적 가치에 정치색을 끼얹는 것을 불편해 한다.
불과 6년 전 벌어진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 정부를 임기 내내 괴롭혔고 사실상 식물정권으로 만들다시피 했다.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로 그때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소문들은 대부분 과장됐거나 허구였다.
미국에 대한 혐오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흥남철수'로 대변되는 착한 이미지의 미군을 표현한 것은 마케팅 측면에서 위험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정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아버지'라는 가족애를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이런 모습이 일부 급진적인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편한 모양이다. 그들에게 미군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고, 대한민국의 성공한 아버지는 서민을 착취해 배를 불린 타도의 대상이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3대 세습을 미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관점의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3년 유럽여행을 갔다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한 교포 가정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여대생이었던 딸은 한국어가 서툴러 독일어로 소통을 했고 독어를 잘 못하는 부모는 여전히 우리말을 썼다.
영화에서처럼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온 부모는 고생 끝에 딸을 독일 명문대에 입학시켰는데 자식에 대한 희생으로 모진 세월을 견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사상, 즉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로 표현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한 청년은 펑펑 울었다. 이 눈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