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학생 : 선생님, 제가 꿈이 있는데요.
선생님 : 그래 네 꿈이 뭐냐?
학생 : 제 꿈은 재벌2세거든요.
선생님 : 그런데?
학생 :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
한동안 인터넷을 달궜던 블랙유머다. '재벌 2세의 꿈' 유머에는 자녀에게도, 부모에게도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불신, 절망이 숨어 있다. 재벌이 가진 사전적 의미인 '다수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진 자본가 또는 기업가의 무리' 외에도 다양한 인식을 갖게 한다. 재벌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창업주는 한국동란 이후 폐허 속에서 기업을 일궜고, 2세는 기업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소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세에 대해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재벌 3세와 얽힌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지만 가장 최근의 '땅콩회항'으로 십자포화를 맞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남동생 조원태 부사장은 2005년 70대 노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저질러 입건된 바 있다.
온라인상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을 비난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은수저 물고 태어난'이다.
영국 속담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쓴 '돈키호테'의 영문 번역본이다. 은수저는 부와 명예는 물론, 아름다움과 건강을 물려받고 태어났음을 뜻했다.
조 전 부사장에게서 재벌3세 타이틀을 뗀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최고의 스펙을 가진 재원이다. 미국의 명문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고 173cm 늘씬한 키에 나름 수려한 외모는 부러움을 자아낼 만하다.
그러나 완벽한 조 전 사장이 반드시 대중 앞에 갖췄어야 했던 이미지는 '겸손'이었고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최근 조 전 사장에 대한 온라인 평판은 '거만함' '갑질' '원정출산' '고소고발' 등 부정적인 것들이다. 온라인 평판 관리에서 자장 중요한 것은 평소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은 이 부정적인 평판을 간과하면서 화를 키운 셈이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이나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도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언론과 누리꾼들이 연일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로서 이런 경우는 마녀사냥과 다름없다.
조 전 부사장의 부적절한 행위와 대한항공의 어이없는 위기관리시스템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중의 비호감이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된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극도의 비호감이 대한항공의 평판 악화에 기름을 붓는 상황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남양유업 막말 사태 이후 회사 주가는 최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고 대표와 회장이 기소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남양유업 사태는 한 영업사원의 폭언과 제품 밀어내기와 같은 기업 행태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그런데 대한항공의 경우는 폐쇄적인 제왕적 기업문화와 함께 재벌3세인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비호감이 더해져 더욱 악화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이번에 회사 위기대응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선제적 위기관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이미 집에 불이나 활활 타는데 소화기 사러 간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은 더 늦기 전에 빨리 불을 꺼야할 때며 조 전 부사장이 입에 물었던 '은수저'를 뱉을 때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