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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생'서 본 우리사회 자화상

나원재 기자 기자  2014.12.01 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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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정규직, 계약직 신분이 문제라 아니라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차장님, 과장님, 대리님하고…."

웹툰 이후 케이블TV 드라마로 제작돼 공감대를 형성 중인 '미생(未生)'의 최근 한 대사에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미생'에서 주인공은 그렇게 사회라는 거대한 바둑판에서 성실히 돌을 놓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나름 피 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사무실의 생생한 현장에 몰입된 시청자들의 표정도 이날 대사에 웃음기는 유난히 사라졌을 테다. 그리고 이보다 더 심각해질 상황은 이후 TV 브라운관를 뚫고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정규직인 '중규직' 개념의 개혁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중규직'은 해고 요건 등이 정규직보다 낮지만 처우는 비정규직보다 높다.

구체적으로 정규직 수준의 대우를 하되 고용 기간은 해당 기업과 근로자가 협의하고, 약정기간 일하는 방식이다. 이유는 알다시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를 위해서다. 해외사례를 빗댄 일자리 창출 효과와 실업률 극복이란 설명도 뒤따르고 있다.

기업의 근로자 해고 비용을 줄여주는 대신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규직 과보호 장치 손질과 비정규직 보호 방안도 마련될 전망이다.

노사 간 괴리감이 향후에 보다 커질 것이란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상황을 쉽게 종합하면 기간제근로자에 4대 보험 등 처우를 정규직 근로자 수준으로 끌어올리지만, 고용기간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정규직의 과도한 취업규칙 등에 기인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화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은 조율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과 근로자 인센티브 제공과 비정규직 근로자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사내 복지기금을 설치한 중소기업은 최대 1억원의 지원금으로 이에 대해 비용을 사용토록 했다. 이에 더해 체불임금에 대한 조율도 진행된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설자리가 점차 줄어 새로운 계약형태의 일자리를 창출, 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의중이지만, 길게 보면 근로환경 악화는 오히려 가중될 공산이 크다.

역으로 보면 이해는 보다 쉽다. 비정규직 근로자 교육 기회 확대는 이미 시행 중이고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계속 제기돼 왔다. 교육기관 등에서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 정작 필요한 교육 콘텐츠는 열악한 까닭이다. '중규직'이 만들어진다고 해 체불임금이 해결될 것이란 수도 미심쩍기만 하다.

4대 보험 적용이란 명목은 있지만, 기간제근로자는 어쩔 수 없는 기간제근로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놓기도 어렵다. 10년의 장기 프로젝트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겠지만, 이런 장기 프로젝트는 거의 없을뿐더러, 기간제근로자를 끼워줄리 만무하다.

해고 요건 등은 정규직보다 낮지만 처우는 비정규직보다 높다는 설명은 '조삼모사'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꿔 말하면 언제든 해고를 할 수 있지만, 처우는 조금 개선할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기간제근로자가 2년 후에도 무기계약직 등 정규직화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중간 과정만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의 이런 '행마(行馬)'는 '곤마(困馬)'를 만들기만 하는 '패착(敗着)'이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면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는 지적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비정규직법이라는 테두리에 속한 기간제근로자와 단시간근로자, 파견근로자를 바라보는 기업의 떳떳한 운영방식을 우선 끌어내야만 한다. 비정규직법이 모든 사업형태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다는 점도 관계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주지해야 한다. 현장은 아는 만큼 보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