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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대증권과 정부기금과 대나무 숲

기금 부실운용 진실공방 벌이면서 정보공개 필요 제안에는 '재갈'

이수영 기자 기자  2014.11.13 11: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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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현대증권이 1200억원대 정부기금 수익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금융투자업계 전체가 '기금도둑'으로 몰릴 처지다. 업계는 운용방식에 대한 오해와 과장 섞인 마녀사냥이라며 손실액 규모도 실체가 없다고 맞서 진실공방을 벌일 기세다. 하지만 기금과 위탁운운용사, '그들만의 리그'로 펼쳐진 밀실운용이 문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없다.

12일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으로 촉발된 논란은 현대증권이 30조원대 정부기금을 굴리면서 2008년부터 작년까지 이자수익 1200억원 상당을 다른 고객 계좌로 빼돌렸다는 게 골자다. 이에 현대증권은 한 직원이 1100만원 정도의 기금수익을 유용한 것은 맞지만 이는 직원 개인의 잘못일 뿐 회사는 무관하다고 버티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업계는 뒤늦게 CP(기업어음)과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 이름도 생소한 상품들을 들먹이며 그동안의 운용 관행을 설명하고 나섰다. 기금들이 보통 위탁운용사에 최소 수익률(연 4% 수준)을 유지해줄 것을 요구하는데 주식이나 파생상품으로는 이를 보장하기 어렵고 어쩔 수 없이 변동성이 적은 금리형 상품(CP 등)을 편입한다는 것.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증권사 직원이 기금 몫으로 투자한 CP를 다른 고객에게 장부가보다 싸게 팔아넘겨 기금에 손해를 끼친 부분이다. 이에 해당 증권사와 업계는 원래 거래 수요가 적은 CP 특성상 장부가대비 할인율을 적용하는 게 관례로 싸게 판 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현직 국회의원과 언론이 '몰라서 하는 얘기'라며 억울함을 토로한 셈이다.

그리고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기가 맞다. 수사기관이나 감독당국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공개하지 않았고 '대외비'로 꽁꽁 숨겨둔 속사정을 낱낱이 지적하고 검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이번 논란 역시 금융감독원이 지난 7월 현대증권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하며 지난달에야 파악한 내용이다. 이미 2008년부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정상적인 운용이 자행됐지만 6년 만에야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전까지는 기금을 맡기는 각 정부부처도, 기금을 굴리는 금융사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지난해 평잔액이 6조원이 넘는 대형기금인 고용보험기금을 예로 들어보자. 고용보험기금 역시 현대증권에 기금 일부 운용을 위탁했다. 매년 고용부는 고용·산재보험기금 위탁 및 예탁기관 선정 공고를 내고 증권사와 운용사, 은행을 통해 기금운용을 맡기며 매해 전년도 평균 운용실적을 개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문제는 거액의 기금운용 상황을 거의 매달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홈페이지가 고용부와 위탁기관 관계자만 접근할 수 있도록 비공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고용부 측은 "증권사와 운용사를 활용하되 매년 성가를 평가해 부진한 기관은 배제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은행이 기금 위탁운용을 담당하고 있고 어떤 투자원칙으로 얼마나의 수익을 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매달 월급에서 꼬박꼬박 고용보험료 등등을 차감당하는 입장에서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지난해 고용보험기금 평균 수익률이 3.09%로 목표수익률에 0.27% 모자랐고 전체 64개 기금 가운데 자산운용평가 등급이 '보통'에 머물렀다는 것뿐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은 14%가 넘었다.

기금을 포함한 정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기재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기재부는 매년 5월 각 기금의 사업성과와 자산운용성과를 취합해 평가등급을 매기고 이를 '기금운용평가'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보고한다. 해당 평가자료 역시 구체적인 상품 포트폴리오나 위탁기관 현황은 빠져 있는데 기금운용실적은 각 부처의 몫일뿐 우리 소관이 아니라며 연관 짓는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금운용은 각 부처의 여유자금을 굴리는 것으로 우리와 전혀 무관한 사항"이라며 "자산운용실적과 관련해 벌어지는 손실이나 사고는 모두 각 부처의 몫"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구체적인 운용내역과 위탁기관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고용부 자산운용부서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모든 정부기금들은 구체적인 운용 포트폴리오나 위탁기관별 수익률은 비공개로 처리한다"며 "회사별로 수익률 추구방식과 운용스타일은 영업비밀에 해당하고 규모가 큰 기금들은 섣불리 자료를 공개했다가 시장을 왜곡할 수도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수익률에 대한 사후보고까지 '대외비'로 묶어 두루뭉술하게 공개하는 것은 기금운용의 원칙인 효율성과 투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제공이 없이는 현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판단이 어렵고 대책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국민들은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경험해왔다.

기금운용 정보의 독점과 편향을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면 신뢰 추락에 고민하는 업계의 볼멘소리도 한낱 투정으로 끝날 일이다. 섣부른 진실공방을 벌이기 전에 정부는 기금의 주인인 국민에게, 금융사는 수익의 원천인 고객에게 명확한 정보부터 공개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