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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한·중FTA와 국운전망 '아이고, 의미 없다'

산자부, 성과는 대대적 홍보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쉬쉬' 의혹

이수영 기자 기자  2014.11.12 15: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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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어제 재미있는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산천의 암자에서 수련 중이라는 한 역술인이 보낸 사연이었는데요. 제목이 무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과 국운 전망'.

동봉된 프로필을 보니 최근 종편과 일부 매체에서 역술 및 풍수 전문가로 제법 이름을 알리신 분이더군요. 신참 기자 시절 연말연시만 되면 역술원을 뒤지던 기억이 떠올라 단숨에 읽었습니다.

이분이 내다본 '국운'의 내용은 간단하고 상당히 희망적이었습니다. "한중 FTA 타결은 고구려, 발해 영토의 복원으로 과거 영토의 기운이 대한민국을 감싸 커다란 (좋은)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2015년 을미년(乙未年)은 혼란스럽고 힘든 해가 되겠지만 "청와대를 병풍처럼 감싼 인왕산처럼 '여성대통령'의 덕으로 나쁜 기운을 감싸 국운 상승의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더군요. 만리타국에서 FTA 체결의 쾌거를 올린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든든한 응원가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같은 예언(?)에 감히 공감하지 못한 것은 의심 많은 직업병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국운융성의 변곡점'이라고 치하하기에는 우리가 내준 것, 특히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FTA 타결의 기회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번 FTA 타결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함구 또는 '쉬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쌀을 비롯해 농수산업부문을 지킨 것은 크게 홍보하면서 그 대가로 우리가 양보하거나 내준 부분은 확실히 공개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일례로 중국산 저가공세 우려가 큰 철강, 섬유 같은 공산품 관세의 철폐 규모와 시기는 보도자료에서 빠졌다가 기자들의 자료 요청이 쏟아지자 하루 뒤에야 관련 자료를 내놓았는데요.

우리 주력 수출품인 자동변속기, 기어박스, 클러치, 핸들 같은 자동차 핵심부품만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돼 FTA 관세 효과를 적절히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 중국인이 한국기업에 투자할 경우 중국인 직원의 한국 근무를 허용하는 내용도 누락됐습니다. 지금까지는 임원급만 한국 근무가 허용됐는데 이를 계기로 가뜩이나 부족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같은 의혹은 과거 한·미, 한·EU FTA 타결 당시 양허제외 품목 리스트와 전체 비중, 3년, 5년, 7년 단위의 관세 철폐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과 비교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챕터별로 고르게 작성됐던 과거 FTA 자료와 달리 이번에는 유독 농축수산물 분야에만 무려 절반 가까운 페이지를 할애했다니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이에 대해 산업통산자원부 측은 "전날 브리핑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수치 등을 최종적으로 맞춰보느라 일부 누락이 있었다"고 해명했는데요. 이번에도 정부는 최선을 다했는데 기자들, 또는 국민들이 못 알아들었다고 타박하는 건가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줬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한·중 FTA에 대해 '국운융성의 발로'라는 찬사는 너무 앞서간 게 아닐까요? 좀 지난 유행어로 '아이고, 의미 없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