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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빼빼로데이' 상술에 묻힌 '눈의 날'

전지현 기자 기자  2014.11.04 17: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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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1월11일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오자 연중 최대 대목으로 꼽히는 이 기념일을 맞아 유통업체들의 다양한 이벤트가 봇물을 이룬다.

'빼빼로 데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념일로 11월11일의 숫자 1 네 개가 빼빼로를 세운 모양을 닮았다고 해 기념일이 됐다. 이날 연인들은 초콜릿 과자인 빼빼로를 주고받는다.

'빼빼로데이'의 시작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1995년 11월11일은 수능 11일 전으로 이날 빼빼로를 먹으면 수능을 잘 본다는 속설이 퍼져 일부 학교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했다는 것과 1994년 부산의 여중생들이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11월11일에 친구끼리 우정을 나누며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라는 의미를 담아 빼빼로를 교환했다는 것.

시작이야 어쨌든, 자칫 넘길 수 있던 일부 소비층 트렌드를 민첩하게 활용한 제조 및 유통업체들이 대대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11월11일을 이용하면서 '데이 마케팅'의 전설을 탄생시켰으니 그들의 영리함은 절로 박수갈채가 부를 만큼 감탄스럽다.

그러나, 짚고 갈 것은 이날이 대한안과협회가 지정한 '눈의 날'이라는 점이다. '눈의 날'은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 안구 건조증 환자와 유행성 안과질환 환자가 늘어나는 만큼 눈에 대한 올바른 상식과 중요성에 대한 계몽을 목적으로 지정됐다. 지난 1956년 생긴 이래 올해 44회를 맞을 정도로 역사도 깊지만 '빼빼로데이' 마케팅 상술에 묻혀 이날이 '눈의 날'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한안과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비영리단체인 만큼 마케팅 활동에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며 "눈은 청소년기에 잘못 관리하거나 평소 관리가 소홀하면 노년에 사회직간접 비용을 많이 초래해 1년에 단 하루라도 경각심을 일으키자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빼빼로데이'에 밀려 홍보가 더 힘들"고 씁쓸해 했다.
 
여기 더해 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농민의 날)'이기도 하다. 11일이 벼 모양과 닮아 정해진 이날은 국민경제의 근간이 농업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국가가 제정한 법정기념일이지만 역시나 빼빼로데이에 묻히고 말았다.

빼빼로데이의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오늘날 우리는 무수히 많은 '데이'들을 접하고 있다. 빼빼로데이와 근접한 14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날 하루에만 △무비데이 △쿠키데이 △안개꽃데이 △오렌지데이 △레터데이까지 무려 6개의 타이틀이 달려있다.

물론 롯데제과를 위시한 일부 제조 및 유통업체들은 빼빼로데이의 상업적 문화에서 벗어나 나눔과 기부를 실천하는 날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이날을 기준 삼아 빼빼로를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등 사회공헌 실천에 나서고는 있다.

하지만 11월11일을 '빼빼로데이'로 정하고 마케팅을 펼치기 전에 눈앞의 이익만 쫓는 상술로 국가에서 제정한 법정기념일이 묻히고 국민 계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먼저 살피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

소비가 침체된 현재 대한민국 경제에 각종 '데이'는 소비자 지갑을 열게 하는 좋은 수단이자 전략이다.

그러나 '빼빼로데이'가 신중함 없이 만들어진 마케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뒤범벅된 오만가지 데이가 난무하는 현실에 눈살이 찌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