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7거래일 연속 하한가'. 말만 들어도 오싹한 종목이 코스닥시장에 떴습니다. PC 냉각장치(쿨러) 생산업체인 잘만테크(090120)인데요. 지난 대선에서 일명 '안철수 테마주'로 유명세를 탔고 3D디스플레이, 비트코인 등 IT 관련 테마마다 단골손님으로 이름을 올린 특징주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모기업인 모뉴엘(대표이사 박홍석)이 갑작스러운 법정관리 신청에 이어 400억원대 사기대출 혐의를 받아 대표 이하 임직원 대부분이 쇠고랑을 차면서 나락으로 떨어졌지요.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잘만테크에 대해 지난 일주일 동안 두 건의 조회공시를 요구했습니다. 지난 28일 대출원리금 연체설에 이어 이틀 뒤인 30일에는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 개시 신청설에 대한 사실 확인이었는데요.
이에 대해 회사는 외환은행으로부터 30억원 규모의 차입금 상환요청을 받았으며 원리금 상환 협의 중이라고 29일 밝혔습니다. 거래소는 나머지 조회공시 답변이 나오기도 전인 31일 잘만테크의 주식거래를 정지시켰죠.
31일 서울세관은 박홍석 대표 등이 2009년부터 지난 7월까지 3330차례에 걸쳐 홈씨어터 PC 120만대(약 3조2000억원 상당)를 정상제품 수출인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446억원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 대표는 허위수출 채권을 이용해 국내은행으로부터 수백억원대 대출을 받아 이 돈을 각종 로비와 개인별장 구입에 썼고 심지어 카지노 도박판에 뿌리기도 했다는군요.
이와 관련해 자회사인 잘만테크 역시 실적 부풀리기에 휘말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입니다. 2007년 코스닥 상장 이후 2011년 7월 모뉴엘에 인수된 잘만테크는 그해 1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이듬해 22억원, 지난해는 54억원으로 실적성장세가 뚜렷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회계부정에 대한 내부고발이 접수됐고 금융감독원의 회계감리 사실이 지난 23일 확인됐죠.
모뉴엘의 사기대출 정황과 박 대표의 배임 행각이 속속 드러날수록 소액투자자들이 입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모뉴엘은 잘만테크 지분 60.28%(1934만8216주)를 가진 최대주주입니다. 박 대표 역시 지분 0.13%(4만505주)를 보유한 특수관계인입니다.
지난 22일 모뉴엘 법정관리 소식에 가격제한폭까지 고꾸라진 잘만테크는 거래정지 전날인 30일까지 7거래일 연속 하한가로 내려앉았습니다. 주가 하락률만 따지면 62% 정도 되더군요. 잘 나가는 기업, 그것도 한꺼번에 회사 두 곳이 '초박살'나기까지 불과 열흘도 안 걸린 셈입니다.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계가전박람회(CES) 기조연설에서 모뉴엘을 주목할 기업으로 지목했다는 것도, 불과 석 달 전 박근혜 대통령이 회사 제품을 살펴보며 "희망이 보인다"고 격려한 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요. 문제는 잘만테크 지분 38%가량을 소액주주들이 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투자원금은커녕 정리매매 기회까지 날리게 생겼다는 점입니다.
투자자들은 거래소의 거래정지 조치가 너무 늦었다며 감독소홀을 탓하고 있는데요. 모기업의 부실부터 회계부정까지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동안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현행 규정에 따르면 급등종목의 경우 투자경고와 투자유의 등의 조치가 내려지지만 급락종목은 사유 공시만 하면 된다고 하네요.
아무리 투자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오너가 작정하고 회계법인과 감독당국까지 속인 이번 사태에서 소액주주들에게 닥칠 후폭풍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