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김희중 현대씨앤알 부장 "감정노동근로자, 자존감 회복 가장 중요"

감정노동 피해 부각 보단 좋은 사례 발굴·전파로 인식전환 유도해야

추민선 기자 기자  2014.10.30 12:29:28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1. 팀장과 수차례 퇴사 면담을 한 A사원은 늘 부당한 상황에서도 참아야하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나 더 이상 콜 업무를 하기 싫었다. 그러나 3-4회 상담을 받으면서 부정적 감정의 해소를 통해 고객과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살피고, 고객 반응에 심리적으로 휘말리지 않게 되면서 근무 때 느끼는 분노가 크게 줄었다. A사원은 누군가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억울함과 고통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2. 아들뻘 되는 고객에게 심한 욕설을 듣고 전화받기가 두려워 의뢰된 50대 초반의 B사원. 대개의 경우 주 1회 상담이지만 B사원은 매일 상담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외상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와 불안이 줄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업무로, 이러한 직종 종사자를 감정노동자라고 명시한다.

대표적 감정노동 직종은 △은행원 △승무원 △백화점 및 대형할인마트의 판매·판촉사원 △콜센터상담사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누른 채 본인 직무에 맞게 정형화된 행위를 해야 하는 감정적 부조화에 빠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좌절, 분노, 적대감 등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으며 심각한 경우 정신질환 또는 자살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노동이 최근 사회문제로 이슈화되면서 각계각층에서는 감정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개선과 사회인식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콜센터의 경우 오래전부터 악성민원과 성희롱 민원에 대한 매뉴얼을 정립해 상담사들의 인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감정노동자 보호 우수기업에 선정된 현대 C&R의 김희중 부장을 만나 감정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들을 위해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심리상담사 제도 시행…이직방어 역할 '톡톡'

현대 C&R은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자회사로 지난 2011년부터 콜센터상담사들을 위해 심리치료사를 배치하고 치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당시 언론에 감정노동 문제가 거론된 후 콜센터상담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게 됐고 그 방안으로 심리치료사를 배치한 것.

그러나 도입당시부터 효과를 본 것은 아니었다. 김희중 부장은 외주업체를 통해 전문상담사를 배치했지만 콜센터상담사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효과적인 상담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심리치료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꾸리고 있다. 상근직, 비상근직 각 1명씩 총 2명으로 운영되는 심리치료상담실은 예약제며 직접 방문이 힘든 경우에는 이메일과 회사 내 메신저로도 상담을 지원한다.

김 부장은 "처음 상담실 운영에 실패한 후 정규직으로 채용된 심리상담사들에게 직접 콜센터 업무를 체험하게 하게 했는데 이후 이뤄진 상담에서는 콜센터 업무에 대한 이해가 늘고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졌다"며 "이 방침 이후 상담을 받은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심리치료상담실의 이용 횟수는 한 달 기준 평균 50회 정도다. 한 번 상담을 시작하면 일회성 상담에 그치지 않고 5~6회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해 상담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각 팀별로 동료심리상담사를 배치해 운영 중이다. 업무 중 어려움을 1차적으로 동료 선배에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현대씨앤알은 동료심리상담사 자격이 있는 상담사에게 심리상담 교육은 물론 이들에게 시간적 권한을 줘 원활한 상담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전담 심리치료사 및 동료심리치료사 시스템 운영으로 상담사들이 회사를 통해 보호받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이직을 방지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김현정 현대씨앤알 클린센터본부지원 팀장은 "누구에게나 직무 스트레스는 계속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감정노동자의 경우 다른 직군에 비해 불평등한 고객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심리적 좌절과 통제감 상실에 따른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이어 "심리상담을 통해 고객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정화하고 심리적 적응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는 곧 상담사들의 심리적 안녕감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조직 생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첨언했다.

◆가장 큰 우려는 감정노동 직업에 대한 오해

김 부장은 감정노동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관심은 물론 그 의미와 인식이 전달되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도 자칫, 콜센터가 심각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직업이라는 사회적 평판을 갖게 될까 우려했다.

실제 한국능력직업개발원에서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종 30'을 조사한 결과 가장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직업은 '승무원'이 1위였다. 또한 판촉·판매사원, 장례지도사, 아나운서 등도 상위권에 위치했다.

그러나 콜센터상담사와 텔레마케터는 각각 10위와 11위에 이름을 올려 감정노동이 가장 심각한 직종일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거리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대부분 감정노동자에 대한 내용을 콜센터 위주로 다루다 보니 마치 콜센터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며 "실제 한 달 콜센터 고객응대 중 폭언이나 성희롱 고객은 10건 미만 정도(현대씨앤알 기준)"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고객응대를 통해 칭찬이나 만족을 표하는 경우는 1500건이 넘고 있다"며 "좋은 사례가 많은데 너무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승무원이 가장 감정노동에 심각하다는 조사결과에도 문제가 커지지 않는 이유는 승무원 스스로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직업에 대한 자존감이 클 경우 일부감정적인 얘기를 해도 무시할 수 있어 콜센터상담사 역시 스스로에 다한 자존감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칭찬은 상담사도 춤추게 한다' 칭찬 콜 프로모션

현대씨앤알은 심리치료를 통해 콜센터 상담사들의 자존감 회복은 물론 악성고객으로부터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도 꾸리고 있다.

악성고객은 아무리 대외적인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도 줄이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는 만큼 현대씨앤알은 성희롱이나 폭언 고객이 발생할 경우 전용버튼을 통해 음성으로 응대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또한 별도 민원 응대팀이 폭언이나 성희롱고객을 전담해 응대함으로써 상담사들이 마음의 상처를 최대한 받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응대팀은 폭언이나 성희롱 정도가 지나칠 경우 내용증명을 보내고 법적인 처벌부분까지 검토해 추후 재발할 수 있는 악성고객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외에도 매달 진행하는 '칭찬 콜 프로모션'을 통해 칭찬을 많이 받는 상담사에게 시상하고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김 부장은 "상담사들이 칭찬을 더 많이 받게 되면 악성민원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어버리는 효과도 있다"며 "칭찬은 상담사들에게 비타민과도 같은 역할이며 한 고객은 중국에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업계에서도 고충사례보다 미담사례를 공유하고 확산시킨다면 상담사들의 직업에 대한 자존감 회복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물론 감정노동을 스스로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