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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현정은式 긍정과 혁신은 '간 보기'인가요?

현대증권 매각 결국 해 넘겨… 현대그룹 정상화 의지에 의구심

이수영 기자 기자  2014.10.22 12: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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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급물살을 타는 듯 했던 현대증권 매각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됐습니다. 매각 주관사인 산업금융지주 홍기택 회장이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대증권의)가치를 더 높일 필요가 있어 매각을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는데요.

당초 오는 27일 예정됐던 본입찰은 내년 1월로 순연됐습니다. 이미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구조조정 이후 팔겠다며 입찰을 올해 말로 미룬 바 있는데요. 이쯤 되니 현대그룹이 매물을 팔 생각이 있긴 한 건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현대그룹의 '변심'이 읽혀지는 대목은 꽤 여러 곳입니다. 차일피일 미뤄지는 매각 일정이야 가격 협상이 꼬였다 치더라도 곧 팔릴 현대증권이 그룹 계열사 유상증자에 연쇄적으로 참여한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현대그룹이 자구계획을 제출한지 불과 1주일 만에 현대증권은 200억원 규모의 현대유엔아이 유상증자에 참여했습니다. 올해 3월에는 62억원 상당의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에 나섰죠. 현대유엔아이는 현대그룹 내 IT업체입니다.

2012년 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총자산 507억원, 순자산가치는 217억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상증자로 200억원의 자금을, 그것도 구조조정 중인 금융계열사가 나서 수혈한 것에 비난이 쏟아졌지요.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는 얘기가 좀 더 복잡합니다. 회사는 올해 초 스위스 소재 승강기 업체 쉰들러그룹과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었는데요. 쉰들러는 과거 KCC가 보유했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인수해 2대주주로 이름을 올렸죠. 그런데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손댔던 파생상품이 2000억원대 손실을 입으면서 문제가 된 겁니다.

양측은 최근까지도 소송을 통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는데요. 현대증권은 이 과정에서 62억원 상당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에 힘을 보탰습니다.

당시 알프레드 쉰들러 쉰들러홀딩아게(Schindler Holding AG) 회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하고 있다"며 정면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을 비롯한 그룹 자구계획 이행성과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은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일련의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증권 수백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업계를 떠났다는 점은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증권은 지난 8월 초 희망퇴직을 진행하면서 영업점 17곳이 문을 닫았고 최근까지 총 400여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노사 합의를 마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회사 요구를 받아들여 떠난 직원들만 봉이 됐다는 뒷말도 나왔는데요. 최근 그룹의 매각 의지가 약해졌다는 의구심에 실제 매각 일정까지 연기돼 회사를 떠난 이들의 허탈감은 더 커지겠죠. 결국 그룹이 계열사 지원에 몰두하는 동안 수백명의 현대증권 직원들만 희생된 셈입니다.

비슷한 질타는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나왔습니다. 정무위 소속 김기식(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1일 "매각이 늦어진다는 것 자체보다 현대증권이 계열사 출자와 지원을 강화하는 있는 게 문제"라며 "총수 일가가 금융계열사인 현대증권만큼은 팔 뜻이 없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달부터 방영된 현대그룹 TV CF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빨리 가는 것만이 앞서가는 것만은, 혁신은 아닙니다. 잘못된 길은 다시 돌아가고 낡은 생각은 과감히 바꿔가는. 우리의 혁신은 속도보다 방향입니다."

국내 증권업 경기가 수년째 침체된 상황에서 시간에 쫓겨 매각 일정을 서두르는 것은 분명 자충수입니다. 다만 현대그룹의 그룹 정상화 의지가 순수성에서 의심을 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