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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왕의 상석에 잠든 유일한 조선여인

최지혜 학생기자 기자  2014.09.30 11: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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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 바로 조선 왕릉입니다. 현재 40개의 능이 유네스코 지정문화유산에 등록돼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지요. 커다란 봉분과 어우러진 전경이 마치 그 옛날 나라님이 앉아계신 듯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위엄을 실감케 합니다.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훗날 덕종으로 추존)와 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가 모셔져 있는 경릉(敬陵)은 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 등과 함께 '5릉'으로 불린다.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소재해 있다. 사진은 소혜왕후릉. = 최지혜 학생기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훗날 덕종으로 추존)와 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가 모셔져 있는 경릉(敬陵)은 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 등과 함께 '5릉'으로 불린다.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소재해 있다. 사진은 소혜왕후릉. = 최지혜 학생기자
그런데, 이렇게 왕이 잠들어 있는 왕릉의 위치가 그 당시 사연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전무후무하게 왕과 왕비의 위치가 바뀐 왕릉, 바로 소혜왕후와 덕종(1438~1457)이 잠들어있는 '경릉'입니다.

소혜왕후. 우리에게는 성종의 모후 인수대비로 더 친숙하게 알려진 왕실의 여인입니다. 소혜왕후는 세자빈 시절,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출궁했다가 자을산군이 보위를 잇게 되자 왕의 모후 대비로 다시 입궁했죠. 중전에 오르지 않고 대비가 된 유일한 여인이 바로 인수대비입니다.

인수대비는 내명부의 기강을 위해 왕실어른으로서 호랑이 같은 위엄을 보였다고 합니다. 시아버지인 세조조차 '폭비'라 일컬을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다고 해요. 제헌왕후가 성종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자 왕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고, 결국 폐비가 되어 훗날 연산군의 폭정을 불러 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녀와 덕종이 잠들어 있는 경릉은 다른 왕릉과 차이가 있는데요, 죽은 왕이 자리하는 오른쪽에 인수대비가, 왕비의 자리인 왼쪽에는 훗날 덕종으로 추존되는 의경세자가 안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묘를 쓸 때에는 왕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오른 쪽이 상석이 되는데, 철저히 왕을 위한 나라였던 조선왕실에서, 그것도 여인이, 상석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상할 만도 하지요. 그 까닭은 바로, 덕종은 세자의 신분으로 소혜왕후는 대비의 신분으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여자 대통령'으로서의 삶을 산 인수대비의 업적이 덕종보다 더 위대하다고 평가되었기에 여인으로서 상석에 위치할 수 있던 셈이지요. 석조물의 차이 역시 덕종의 능과 인수대비의 능을 한 눈에 구분 짓게 합니다. 서오릉에 잠드신 분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계급으로서 눈을 감은 분이라고 하니 그 능의 크기도 상상이 가지 않은가요.  

성리학이 대세였던 당시 선비사회의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꽤나 혁신적인 경릉입니다. 북한에 2기, 남한의 40기를 비롯해 총 42기의 조선왕릉 중에 왕과 왕비의 무덤 자리가 바뀐 유일한 사례지요. 조선이라고 해서 남존여비사상으로 똘똘 뭉친 꽉 막힌 사회는 아니었나 봅니다.

  이미지  
 
경릉을 거닐 때는 두 분이 자리한 곳을 올바르게 기억해야겠지요. 

깊어 가는 가을입니다. 청명하고 선선한 이 계절을 느끼며, 아주 특별한 사연이 서려 있는 이 숲길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요. 

최지혜 학생기자 /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