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유인도 6개 무인도 50개로 구성된 지도읍은 1980년 전남 신안군에서 읍으로 최초 승격한 신안군의 요지다. 목포에서 66km의 거리에 차량으로 약 40분이 소요되는 무안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해 증도와 임자를 연결하는 가교역활을 하는 신안도서의 중심적 관광 요충지.
지도읍은 무안반도의 최남단 해안지방으로 유물(패총)로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으나, 지도(智島)라는 지명이 문헌상에 처음 나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5 나주목 유천조라고 알려졌다.
현재는 79.75㎢의 면적에 5119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5~6월에 잡히는 병어가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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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광운 기자 | ||
깊은 역사가 말해주듯 지도읍에는 수많은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데 우선 지도읍을 들어서면 '지도읍 공적비군'이 신안군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지도군과 지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유적으로 안산숲 공원에 위치한다.
총 27기의 비석들은 만호, 관찰사, 어사, 군수의 선정 기념비들로 이뤄졌으며 특히 지도진과 관련된 만호들의 공적비가 많다.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어사(御使) 박태보의 휼민기념비(1702)며 그가 호남어사로 순행했을 때의 공적을 기념하고 있다.
조선말기 1881년 지도에 유배 왔던 김평묵의 적려유허비와 1682년에 설치된 지도진(智島鎭)과 1896년에 지도군(智島郡)이 창립되면서 중심지 역할을 했던 지도의 옛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유적지다. 또 걸어서 10분가량 걷다보면 조선시대의 마지막 향교로 유명한 지도향교(智島鄕校)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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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광운 기자 | ||
조선시대 공자(孔子)를 배양하는 문묘(文廟)와 유생들의 교육을 위한 공립교육기관인 지도읍 향교는 봉정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며, 일군일교(一郡一校)의 원칙에 따라 성균관과 향내 유림의 발의로 창설됐다.
지도향교는 향교가 지니는 교육기능이 거의 쇠퇴해 가는 19세기 말에 세워져 동서재가 건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대군수를 지낸 오행묵은 지도향교 양사재를 앞세워 섬사람들의 교육과 학문교류의 활성화에 힘을 기울였고 그 문화적 전통은 지금까지도 지속돼 향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 유림들의 활동이 이어지는 중이다.
다시 차량으로 5분 정도 달리면 필자의 고향이면서 유년시절을 지낸 백련동 두류산이 들어온다. 이곳에는 조선말기 대학자였던 중암(重庵) 김평묵이 지도에 유배를 와 제자들을 육성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 유학의 마지막 성지인 두류단(頭流壇)이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1720년경 주자, 정여창, 김굉필 등 세 분을 모시는 정자를 짓고 제향을 지내오면서 최초의 두류단이 생겼다. 그 후 1914년 호남지방의 선비들이 전라도지방의 학문과 사상에 있어 정신적 지주가 됐던 이항로, 기정진, 김평묵 세 인물을 단비로 모시고 3현단이라고 칭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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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광운 기자 | ||
두류단은 지도읍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적지로 조선말기(1881년) 지도에 유배를 내려왔던 중암 김평묵과 관련된 곳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유학사상가의 명맥이 섬마을 지도에 이어져 내려왔음을 보여주는 유학성지로의 가치가 크게 여겨지고 있다.
시간을 짬내어 잠깐 들러볼 수 있는 곳으로는 지도읍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차량으로 20분가량을 달리다 보면, 모래가 많고 옥이 나온다는 사옥도를 만나게 되는데 사옥도 공적비군과 일제시대에 세워진 석장승을 다도해의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