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6월 '아시안인베스터(Asian Investor)'가 뽑은 '올해의 기관투자가상(Institutional Investor of the Year)'을 수상한 국민연금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아시안인베스터는 저성장으로 기대수익을 실현하기 어려운 금융시장 환경에서도 국민연금이 해외 및 대체투자 확대, 투자 프로세스 혁신과 우수 운용인력 확보를 통해 장기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투자 성과 창출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국민연금의 수익성과는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기금적립금 435조7000억원 중 누적 운용수익금(1988~2014년 4월)이 약 192조원으로 44%에 달한다.
다만 최근 수익성 부진으로 국민연금의 고심이 없지 않다. 국내 안전자산 투자에 치중한 보수적 운용전략으로 수익성은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4.2%선. 이는 캐나다 연기금 CPPIB(16.5%)의 1/4가량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목표치인 6.1%에도 미달한다.
그래서 이미 너무 덩치가 커진 국민연금이 국내 시장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해외투자와 대체투자 요청이 높고 국민연금 역시 이 같은 요청에 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관성적으로 안전지향 필요와 수익성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이상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아시안인베스터 같은 외부인 시각에는 어떨지 몰라도, 국민정서상 수용하기 어려운 투자를 선택하는 패착을 범한 것. 바로 태평양전쟁기 민족수탈 선봉에 섰던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문제다.
◆'수익 근시안' 때문에 전범기업 투자?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연금으로부터 '일본기업 투자현황' 자료를 제출받았다. 이에 따르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금액은 2011년 1801억원, 2012년 3037억원에 이어 2013년 4355억원, 2014년 6월 현재 5027억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누적 투자금액만 1조4256억원에 달한다. 연금공단이 투자한 전범기업도 같은 기간 52→40→47→79개로 확대 양상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인덱스 투자를 하다 보니 이른바 전범기업들이 포함된 것"이라며 "일본 주식시장에서 전범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시가총액 약 20%를 차지하다 보니 이들을 빼고 투자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일정 시점 후에는 (이익을 내고) 빠져야 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다 수익성이 큰 기업들이다 보니 이들 기업을 모두 도외시한 채 투자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게 국민연금의 고충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나중에 국민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 일종의 국가채무를 가진 만큼 장기적 재정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단 이 같은 정서적 문제를 놓치고 대안을 세우지 못하는 데다 정작 지상명제인 수익성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면 문제는 다르다.
이미 전범기업 투자 논란은 지난 번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기 때문인데, 이를 인지하고서도 투자를 유지했다면 적절한 객관적 성과(반대급부)가 있어야 할 것이 자명하다.
이 의원이 국민연금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일본 주식시장에 3조2478억원(6월 기준) 규모를 투자했다. 지난해 2조7095억원에서 5383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해 '아베노믹스'의 효과로 일본 증권가가 달아오르면서 재미를 보자 투자 규모를 늘린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정서 외면하고서도 상투 잡은 투자
올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6.5%에 머물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수익률을 보면 2.8%에 불과하다. 올해 투자한 79개 전범기업 중 29개 기업은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는 게 이 의원의 지적이다.
이는 아베노믹스의 경기부양 효과가 꺾일 것이라는 논의가 이미 일본에서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일었음에도 우리 쪽 투자는 관성대로 움직였다는(속어로 '상투를 잡은') 뜻도 된다. 즉 해외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과제를 받았으면서도, 안정성이라는 논리, 즉 집단사고에 매몰된 국민연금이 전범기업을 골랐고 이에 대한 반발 정서가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유지하는 셈이다.
사실 국민연금의 투자 패턴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엇갈린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회계연도 결산분야별 분석보고서'에서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은 기금운용의 기본원칙이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적립기금을 운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이달 초순 나온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의 '일본 공적연기금 개혁과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 보고서처럼 국민연금이 효율적 기금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기금운용위원회와 최고경영진을 분리할 것을 주문하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지금처럼 수익 우선과 안정성 위주 양쪽 주문이 기묘하게 뒤섞인 상태에서 국민연금에 판단 여지를 주면 결국 전범기업에 투자하고도 제대로 이익을 못 얻는 이상한 답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연금은 내부적으로 이 같은 기대와 때로는 엇갈린 주문을 걸러낸 가운데 최상의 답을 내기보다는 집단사고의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