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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찬선의 이론조론 : Uber와 공유 경제(Sharing Economy)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기자  2014.08.11 15: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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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근래 서울시는 '우버(Uber)'라고 하는 모바일 차량 예약이용 서비스에 대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근거해 불법행위로 제재하겠다는 발표를 했으며, 택시 4개 단체도 택시산업과 택시기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면서 사용자 입장에서의 편리성과 가치를 보면 Uber와 같은 서비스를 원하면서도 수많은 택시기사와 관련 종사자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 기준 삼아 이미 전 세계 42개국의 160여개 도시에 진출한 Uber의 움직임과 유사한 여러 서비스의 출현을 볼 때, 이러한 사건을 일시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패러다임이 바뀌는 메가트렌드의 한 현상으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8년 미국 하버드대학의 법대교수인 로렌스 레식 교수는 그의 저서 'Remix' 에서 물품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서로 대여해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의미를 처음 소개했다.

물론 공유경제의 개념은 2000년 유명한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Age of Access)'에서 이미 언급됐으며 이후 세상의 여러 부분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다.

사실 공유경제의 개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찬성하는 훌륭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사회적 상황과 추세를 잘 설명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공감을 함께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현실에 적용되는 순간 엄청난 갈등과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 Uber 서비스로 인한 사회적 갈등뿐만 아니라 주택 공유서비스인 AirBnB, 차량 공유서비스인 ZipCar 등 공유경제 서비스모델은 세계 곳곳에서 열렬한 환영과 함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Uber와 같은 사례를 통해 공유경제 시대의 가능성을 엿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변화와 대응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Uber는 구글(구글벤처스)에서 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한 기업이라는 면에서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구글은 추가적으로 12억달러, 한화로 1조3000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고 뮤츄얼펀드 역시 12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이 기업의 엄청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 기업의 시장가치는 일본의 세계적 기업 Sony나 Xerox를 뛰어넘으며 잠재적 가치 또한 세계최고의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와 맞먹는다고 한다.

무엇이 이러한 엄청난 가치평가를 가져왔을까? Uber의 사업모델은 'Web2.0'이라고 하는 인터넷 경제모델에서의 롱테일(Long Tail)전략의 의미와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낮은 원가구조와 많은 소비자와 사업가의 참여, 공유경제가 갖는 사회적 가치 등 기존 사업모델에서는 모방하고 따라가기 어려운 가치를 보유한 것이다.

Uber 서비스에 대해서 소비자 관점뿐만 아니라 사업자 관점에서 살펴봐도 흥미롭다. 일례로 기존의 경제모델에서 Uber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수많은 자동차를 구매하고 유지관리하며 적합한 운전인력, 즉 기사를 채용하고 서비스 품질관리를 위해 계속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초기투자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투입, 마케팅과 홍보를 해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사업은 이미 상당한 사업적 기반과 자금을 보유한 기득권을 가진 거대 사업자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프라임경제  
박찬선 넥서스커뮤니티 부사장. ⓒ 프라임경제
그러나 이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시장의 수요를 보는 눈만 있다면 기득권이 없는 사업자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게 됐다. 이것이 바로 기존 경제체제의 기득권이 직면하게 되는 위기인 것이다. 현재로서는 각 나라와 도시에서는 기존 사업자와 종사자를 보고하기 위해 과거의 법률에 의지해 억지로 변화를 억제하고 있지만, 과연 시대적 변화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를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안타깝다.

특히 새로운 기술과 개념의 대두로 인해 수많은 서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존이 위협받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할 때, 진정한 의미의 상호 공존이 가능한 묘안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