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얼굴에 백반증이 있는 한 70대 환자가 법원으로부터 안면장애인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환자는 과거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중 백반증이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자외선이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 때문에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뒀으며 이로 인해 사회생활은 물론 경제생활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법원은 이 환자를 안면장애인으로 판정한 이유 역시 백반증이 결국 한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에 제약을 준 사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가 느끼기에 이번 판례는 장애의 기준을 장애등급이 아닌 장애 관련 법령의 해석에 의해 해석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이와 함께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자 한다.
바로 이 백반증환자는 어쩌면 생업으로 인해 갑자기 엉뚱한 질환이 생긴 ‘직업성 백반증’환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백반증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어떤 이유에서 면역세포가 정상피부색소(멜라닌)를 이물질로 공격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백반증이 생긴 환부는 조직학적으로 멜라닌이 거의 사멸한 상태에 가까우며 다른 부위에도 전이되기 쉽다.
보통 유전소인이나 면역시스템의 교란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 외에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이물질, 화학용품, 공업용 분진 등에 노출돼 백반증이 발생했다면 이는 직업성 백반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9년 경남 거제시 모 중공업의 협력업체 B산업에서 선박건조 도장공으로 근무하던 한 도장공이 도장물질에 포함돼 있는 도료와 경화제에 노출되면서 백반증이 유발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국산업안전공단은 직업병 심의결과 이 도장공의 백반증을 직업성 피부병으로 인정한 바 있다. 국내 직업성 백반증의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현재도 직업성 백반증환자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직업성 백반증환자는 화학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도색공업 노동자가 주를 이뤘다. 백반증을 일으키는 화학약품은 주로 페놀, 카테콜, 파라페닐렌디아민(PPDA) 등의 성분을 꼽을 수 있는데 공정과정에 필요한 도구에 이들 화학성분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학물질로 인해 생긴 백반증은 처음에 발진과 소양증(가려움)을 유발하다 피부변색을 일으키는 특성이 있으며 치료가 어렵고 예후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오늘날 직업성 백반증은 제조업부터 서비스업, 사무직, 연구직 등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원인 역시 다양하다. 기계에 의한 마찰이나 외상에 의해 피부에 손상을 입으면서 백반증이 생긴 경우도 있고 인공자외선, 레이저, 전기제품 등을 취급하다 색소생성능력에 장애가 유발된 사례도 있다. 이 밖에 백반증 발병 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번 안면장애인 판결의 주인공처럼 장시간 지속적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면서 백반증이 나타난 케이스 역시 적지 않다. 임상현장에서도 야외활동이 많은 주차도우미, 농업인, 건설노동자, 워터파크 안전요원 등이 갑자기 생긴 백반증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일단 백반증이 생기면 일상생활에서부터 큰 제약이 따른다. 멜라닌이 부족하다보니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 받을 수 없어 일광화상에 노출되기 쉬어 쉽게 피부가 따끔거리고 붉게 달아오른다.
심지어 백반증 환자에게는 ‘쾨브너 현상’이라고 해서 손상된 피부조직으로 백반증이 전이되는 독특한 특성까지 있다. 일단 외출자체가 힘들어 지는 것이다. 이로 인한 심리적 문제도 상당하다.
결국 이러한 직업성 백반증을 예방하는 길은 기업의 근로자 보호의지에 달렸다. 근로자가 위험물질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도록 위생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보호장비, 샤워시설 등의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안전한 작업장이 될 수 있도록 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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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근로자 중 백반증이 의심된다면 즉시 의료기관을 찾길 바란다. 백반증은 난치성질환이지만 병변이 크지 않고 초동조치가 빠를수록 치료효과가 높고 예후가 좋다.
이진혁 우보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