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국 15개 지역에서 치러진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개표 결과 새누리당이 11석을 차지해 4석에 머무른 새정치민주연합을 누르고 대승을 거둔 가운데 최대이변은 역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으로 지목된다.
참고로 7.30 재.보궐 선거에 당선된 후보자는 개표 마감과 동시에 별도의 당선인 신분기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국회의원 잔여임기(1년8개월)를 시작하게 된다.
'박(朴)의 남자'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친노'로 분류되는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무려 1만1204표로 꺾고 여유 있게 당선됐다. 전남에서 새누리당 원조격인 '전두환의 민정당' 간판을 달고 당선되기는 1988년 이후 26년만에 처음으로, 정치사적 의미가 적잖다는 평가다.
이정현 의원은 개표결과 6만815표(49.4%)를 얻어 4만9611표(40.3%)를 얻는데 그친 서갑원 후보를 9.1%p 차로 눌러 '접전' 또는 '박빙우세'가 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정현 의원이 승리한 것은 '일꾼론'을 들고 나온 선거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며, 서갑원 후보가 완패한데는 당내 지지세력을 한데 규합하지 못한 것이 뼈아픈 실책으로 귀착되고 있다.
본지에서는 이정현 압승배경과 서갑원 패인을 정리해 봤다.
◆1여(與), 다야(多野) 구도
서갑원 후보는 치열한 당내경선을 통과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당원명부 800명 유출의혹 그리고 단기전화 가설과 착신전화를 통한 선거인단 모집 등의 이의를 제기한 당내 경선후보들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다.
당내 경선에 참여했던 서갑원의 정적이자 라이벌인 노관규 전 시장은 눌렀지만 끝내 손을 내밀지 않았고 조순용, 김영득 후보는 '반칙 경선'이라며 아예 경선에 불참하는가 하면, 구희승 후보는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순식간에 '1여 다야' 프레임이 짜였다.
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선대위에 몸을 담갔지만, 나머지는 중립을 지키거나 발을 뺐다는 것이 지역정가의 진단이다. 새정치연합 당내 경선이 이처럼 치열한데는 '경선통과=당선'이라는 익숙한 관행에 젖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탓에 서갑원 후보는 당내 동력을 잃어 선거기간 내내 고전해야 했다.
이정현 후보는 선거일을 불과 며칠 남기고 전입했음에도 여유 있게 승리한 것은 이정현 개인의 호감도가 컸고, 야권이 분열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동작을'보다는 순천을 택한 것이 주효한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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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30일 밤 순천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박대성 기자 |
노무현대통령 의전비서관 출신 서갑원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탄핵바람을 타고 일약 43살 나이에 '금배지'를 달았지만, '로비 기업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은 것이 나중에 탈이 났다.
박연차로부터 수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2011년1월) 끝에 추징금 5000만원, 벌금 1200만원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때문에 그해 4월27일 서갑원 후임을 뽑는 보궐선거가 치러졌고, 민주당이 야권연대용 '무공천'을 통해 양보해 당시 정치신인 김선동 민노당 의원을 배출시켰다.
이어 2012년 4.11 국회의원 총선에 김선동이 통합진보당 간판으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으나 또다시 최루탄 투척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해 이번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등 순천·곡성에서만 수차례의 시장과 국회의원 연쇄 보궐이 치러져 시군민들이 염증을 토로했다.
서 의원은 선거기간 내내 "박연차 돈은 받지 않았다. MB정부의 친노탄압"이라며 항변했지만, 시민들은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날 순천·곡성에 '선거좌판'을 벌인 원죄가 서갑원에 있다고 숙덕거렸다.
◆시장은 뇌물, 국회의원은 박연차 뇌물
순천사람들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조충훈 후보를 당선시켜 재선시장을 만들어 놨다. 조 시장은 민선3기(2002년 7월~2006년 6월) 직무 중에 5000만원 뇌물수수건으로 한 차례 구속됐다가 특별복권돼 피선거권을 회복한 뒤 '납작' 엎드려 2012년 4.11 순천시장 보궐에 출마해 당선된 뒤 올 6.4지방선거까지 내리 무소속으로 재선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조 시장의 과거전력을 문제 삼아 시장과 국회의원까지 전부 전과자로 뽑을 순 없지 않냐는 말이 시중에 나돌았다. 서갑원 후보를 지칭한 말이다. 선거용인지 아니면 경각심 제고 차원인지는 구분키 힘들지만, 지역의 이런 부정적인 기류가 과거 이미지가 있는 서갑원 후보와 겹쳐 참신성 면에서 손해를 본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당 지도부에서도 당선을 낙관한 나머지 참신한 인물보다는, 경선과정에서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경선을 통한 승복만을 주문한 것도 패착이다. 또 당에서 비리전력이 있다며 서갑원 전 의원을 복당시켜주지 않다가 경선을 하루 앞두고 전격 복당을 허용한 것도 무소속 출마를 막겠다는 명분이었다손쳐도 난맥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박연차 비리사건에 연루돼 낙마한 사람을 재차 공천한 것은 별탈없이 당선될 것이라며 지역민을 얕잡아본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결과적으로는 공천실패라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의 이구동성 관전평이다.
◆2년 뒤 선거구 획정 분구 헤게모니 싸움
순천·곡성 인구는 31만명으로 전국 최대 선거구다. 분구기준인 31만명을 채우지 못해 1명만 선출했으나, 여수는 인구 29만명에도 여수박람회를 고려해 지역구에 2명의 의원이 배정됐다.
이 때문에 2년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협상될 여야 선거구 획정에서 순천·곡성에서 2명을 뽑아야 한다는 말이 제기되고 있다. 4년마다 틀을 짜는 선거구 획정은 여야 협상을 거쳐 29만~33만까지 비례대표를 증감을 고려해 짜여지고 있다.
선거구 획정시 서갑원 보다는 이정현을 뽑는것이 선거구 획정에 유리하다는 말이 지역에서는 파다했다.
또 노관규 지역위원장 시절 친분관계에 있던 시도의원들이 서갑원 지역위원장으로 바뀔 경우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대타로 이정현을 물 밑에서 지원한 사람이 포착되기도 했다.
◆닦고 조이고 단련된 순천사람들
순천은 2008년 총선 이후 6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표심 훈련이 잘된 지역으로 꼽힌다. 야권연대를 위해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김선동 의원을 선출하는 '통큰' 아량을 발휘했다.
반면 순천정원박람회를 기획하고 이끈 노관규 순천시장이 시장직 중도사퇴 후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가차없이 낙선시키고 김선동에 표를 몰아줘 재선의원으로 등극시켰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2년 4.11 시장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 허정인 후보를 외면하고 "뇌물 반성한다"고 머리를 조아린 조충훈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켜 내리 재선을 시켜주는 등 특유의 '양떼몰이' 투표성향을 보였다.
이번에 순천인구(28만) 보다 9배나 적은 곡성(3만) 출신 집권여당 이정현 후보를 찍어준 것은 순천사람만이 가진 '야릇한' 표심형태라는 분석이다. 순천을 자꾸 정치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불만이 '역선택'을 강요한 면이 없지 않다.
순천에는 경상도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광양제철과 여수석유화학산단의 배드타운으로 도시가 성장하면서 직장은 광양에, 집은 순천에 두는 유입인구 비율이 높아진 것도 새누리당 후보가 점차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평이다. 광양·순천은 경남 하동과 맞붙어 있다.
더불어 이번 선거에서 광양과 여수 기업체 가족 상당수가, 광주와 수도권 등 출향인사들도 지인들을 동원해 원격으로 이정현 후보를 지원한 것도 승기를 잡은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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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순천만정원에서 출마기자회견을 가진 이정현 후보가 예상 밖의 지역민 환대에 입을 크게 벌리고 파안대소하고 있다. = 박대성 기자 |
◆이정현의 촌스런 복장, 투박할 말투
이정현 후보는 이번 선거기간 당의 지원유세를 일체 배격하고 오로지 홀로 뛰었다. 중고자전거를 구입해 확성기로 즉석 연설을 하며 2주간 선거운동을 폈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곡성 목사동 촌놈, 담터댁 큰 아들"이라며 시골사람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또한 뒷배경없이 혼자 힘으로 전라도 사람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정무·홍보수석을 역임한 고생에 대해 칭송하는 촌로들이 많았다.
이정현 후보는 선거기간 다소 불쌍해보이는 행색과 투박한 전라도사투리, 때론 울먹이며 읍소하는 장면에서는 정에 약한 전라도사람들의 표심을 '갉작갉작' 건드렸다는 평이다.
이 후보가 중앙당의 지원을 일체 거부한 것은 호남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호남에서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원흉인 '전두환의 민정당' 후예 격인 새누리당을 곱잖고 마뜩찮게 바라보는 시각이 엄존해 있다. 선거전략이든, 세월호 사건이든 간에 네거티브를 배격하고 오로지 '지역발전론'에 어필한 이 후보의 우직함이 사시를 뜨고 보는 지역사람들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렸다는 것이 지역정가의 시각이다.
또한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모처럼 당선권에 든 이정현 후보를 만나자 자비를 들여서까지 '이정현 구하기'에 나선 것도 승리의 요인이다.
◆'예산폭탄' 논쟁에 호남고립 탈피
순천곡성 지역민이 집권당 후보를 찍은데는 지역의 현안사업이 지지부진한데 따른 반발심리로 해석된다.
막대한 관리비용이 투입될 순천만정원(박람회장) 사후관리 비용이나 현안인 지역대학 의과대학 유치문제, 광양만권 3개시 교류 등을 위해서는 '힘있는 여당론'이 먹혀든 면도 있다. 실제 국립대학 가운데 소도시에 자리한 순천대학의 구성원 상당수는 역학관계상 이정현을 밀었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갑원 의원시절 순천대 공대를 포스코 지원을 업고 광양으로 이전한다는 구상이 지역 정치권 반대에 밀려 무산된데 따른 섭섭함이 이정현이라는 임자를 만나 표심까지 이른 것도 있다. 무엇보다 이정현 후보는 선거기간 '예산폭탄' 발언으로 지지부진한 현안사업을 풀겠다고 공약했다.
실제로 얼마나 일을 잘 할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당선시켜서 일을 잘못하면, 1년8개월 후 바꾸면(낙선) 되지 않느냐"며 '딱 한 번만'을 외친 것도 보궐이라는 특성을 감안한 전략으로 유권자들에게 속된 말로 먹혔다.
또 하나는 김효석 전 민주당 의원이 '담양·곡성·구례'에서 3선의원을 역임했으면서도, 곡성 지역발전에 무관심했다고 토로하는 곡성군민들의 여론이 인물위주 투표를 몰고 있다. 이와 함께 보수정권에 10년간 권력을 내주면서 정권핵심에서 소외되면서 지역발전도 더디고 있다는 자책도 실용적인 투표를 감행케 했다.
타지역에 비해 정치의식이 앞선 호남사람들이 영남에 기반을 둔 새누리당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서 그간의 방어적,수세적 표심에서 벗어나려는 정황이 나타나 영남에서도 호남을 새롭게 보는 인식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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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 박대성 기자 |
이정현 후보는 선거기간 새누리당이 '호남포기론'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호남에 구애를 보내도 매번 선거때마다 10% 미만의 표를 주는데 따른 섭섭함이 표출돼 일부 당직자들 사이에서 '호남포기론'을 들고 나왔다.
이정현 후보는 일당독식을 없애려면 여야에 고루 표를 주고 요구사항을 제기해야 도리상 맞다는 표현을 써 왔다. 이런 호소가 지역민들에 일정부분 주효한 면이 없지 않다. 새누리당이 검증된 인물을 공천할 경우 호남에서 얼마든지 당선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다.
그간 호남에 출마한 새누리당 몇몇 후보들은 당선가능성이 낮다며 '며느리도 모르는' 생판 '초짜'를 내민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호남에서 표가 안나온다"고 원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도 4년 전 전북지사에 출마해 18.2%를 얻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한 번 지낸 이정현 후보도 2년전 광주서구에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4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린 전적이 있다. 몇번 낙선하면서 공력을 들인 비용이 이번에 커다란 과실을 수확케 한 셈이다.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은 영남에서 인물위주로 공천하면 충분히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치사적 의미가 큰 순천·곡성 선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