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5월 아웃소싱산업을 대표하던 한 회사가 문을 닫았다. 직원들은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게 출근한 상태였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사무실로 복귀한 직원들은 믿기 힘든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회사가 경영악화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도산을 결정한 것이었다.
갑자기 닥친 현실에 많은 직원들은 실업자라는 새 명찰을 단 채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이른 출근과 잦은 야근, 몸이 좋지 않아도 업무차질을 막기 위해 구슬땀 흘려 일했던 회사는 언질 한 번 없이 최악의 결정을 내렸고 직원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큰 규모의 기업뿐 아니라 중소아웃소싱 기업들 사이에서도 수없는 기업들이 폐업과 도산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4대보험, 부가세, 퇴직충당금 등 이미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은 모두 소진한 상태인 만큼 남아 있는 자금이 없어 근로자들은 두 번 울고 있다.
파산한 기업 대부분은 직원 임금은 해결한 상태며 퇴직충당금은 체당금에 의존하고 있다. 부가세와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은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열심히 납부했기 때문에 떼어먹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고들 한다.
일부 기업의 경우 신규 법인을 만들어 업무를 전환배치하는 치밀함을 보이거나 차명으로 돈을 빼돌리기라도 하지만 직원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파산할 수도 있으나 뒤처리는 깔끔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론이자 대명제다. 파산한 사업체 경영주는 직원 임금과 퇴직금 정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사용기업과의 업무정리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이렇듯 체당금에 의존하면서 회사를 정리했던 기업이 재기를 준비하고 있어 퇴직 직원들은 물론 아웃소싱기업, 사용업체 사이에서 이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체당금은 명백한 근로자 임금
체당금제도는 고용노동부가 도산이나 폐업을 한 사업주 대신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미리 지급해 주는 것으로, 임금채권보장법을 근거 삼아 3개월간 체불임금, 3년 동안의 퇴직금을 나이에 따라 상한액을 두고 지급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당금은 정부가 보유한 여유자금이 아닌 근로자들 임금에서 일정부분을 납부하는 기금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체당금은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매년 초 전년도 소득을 기준으로 고용·산재 보험 개정 신고 시 임금채권부담금(0.04%)을 포함해 공제하고 있다.
또한 체당금은 근로자들의 임금이 모여 기금이 마련되고, 폐업이나 도산한 업체 근로자들의 최소한도의 생활을 지원하게 된다.
이처럼 근로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체당금 제도를 일부 도산 기업 대표들이 악용하고 있어 심각성이 더해진다. 기업이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서 사실상의 도산이 인정됐을 때 체당금 신청이 가능한 점을 악용해 고의 도산과 폐업이 이뤄지고 있다. 결국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지불해야 할 퇴직금과 임금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게 최근의 현실이다.
그러나 체당금 역시 국가가 근로자들이 마련한 기금에서 빌려온 형식이라 다시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폐업이나 도산을 한 사업주의 경우 사업주 명의의 소득이 있거나 재산이 있을 때 정부는 우선적으로 구상권을 행사해 체당금을 갚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 임금 도둑질로 재기?
정부는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빌려준 체당금을 갚도록 하고 있지만 실질적 효과는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이나 도산을 한 사업주는 배우자 명의나 타인의 명의를 빌려 재기를 시도하고 있었으며 통장이나 재산 모두 차명으로 꾸려 정부가 돌려받을 방법이 사실상 차단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모은 임금을 도둑질해 재기를 하는 것"이라며 "체당금은 책임을 질 사업주를 대신해 정부가 우선변제 방식을 통해 모아놓은 근로자 임금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무책임하게 도산과 폐업을 반복하고 재기한다는 것은 동종업계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명백한 사기행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근로자들이 쌓은 기금을 무책임한 사업주가 자신의 책임을 회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권리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고의부도·폐업을 막기는 불가능한 현실이며 다시 재기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뾰족한 묘안은 없다. 배우자 및 타인 명의를 빌려 사업체를 재설립해 운영하고, 소득 역시 차명계좌를 이용할 경우 사기죄로 고소 형사 처벌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를 적발하는 것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체당금 사업주 책임 회피수단 악용
이러한 폐해 탓에 건실하게 사업을 운영 중인 동종업계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들 듯, 마치 아웃소싱의 모든 분야의 관행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형사고발에 따른 사기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으나 근거와 증거 수집이 여의치 않은 만큼 동종업계 내 자체 감독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근로자의 피땀으로 이뤄진 체당금이 무책임한 사업주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절대 안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에 더해 한 변호사는 "현재 체당금과 관련한 법률은 임금채권보장법 28조에 의해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며 "28조에는 체당금을 거짓, 부당행위로 수령하거나 재산목록 제출을 거부한 자에게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임금채권법이외에도 부당한 방법으로 고의도산·폐업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또한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를 반복하는 관행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부분이지만 적발 역시 힘든 만큼 경영자의 경영윤리의식에 더 많이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근로자 임금을 보호하고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의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