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교육칼럼]아기장수와 날개..부모는 꿈꾸는 아이들의 조력자

프라임경제 기자  2007.03.26 10:25:16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한국은 천재를 망치는 교육을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청소년 감옥에 돈을 쏟아 붓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 변화가 빠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이들은 한 몸에 많은 모순을 인식하며 자라난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세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모순. 혼이 담기지 않은 껍데기뿐인 강의. 특별한 재능을 지닌 많은 아이들이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날개를 잘려간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아기장수 우투리’는 날개가 있다. 그 시대에는 아이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계급제도가 있는 억압의 시대였으며 그 억압으로 인한 공포의 시대였다. ‘아기장수 전설’ 또한 날개가 있는 아이를 죽이거나 날개를 처음부터 잘라버리는 내용이다. 이것이 과연 선천적인 계급이 있었던 조선시대에나 있었던 일인가? 그렇지 않다. 현대의 아이들에게도 어김없이 이 잔인한 일들은 행해지고 있다. 아기장수 전설은 상징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 날개를 달고 있다. 그 날개를 잘라버리는 것은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인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고통스럽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자신의 날개를 스스로 잘라버린다. 입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의 재능은 묻혀버리고 단지 반에서 1등을 하느냐, 전교에서 몇 등이냐가 자신의 평가 기준이 되는 오늘날, 1등은 한 반에서 단 한명이며, 전교등수도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끝없는 경쟁인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 아이가 1등을 하더라도 안심은커녕 숨 돌리자마자 또 다시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잘난 엄마친구 딸, 또는 엄마 친구 아들로 인해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 자신의 삶은 없다. 자신만의 아름다운 날개를 꺾이고, 아이들은 뛰기를 강요당하며, 심지어는 걷거나 기어 다니기를 강요당한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고 지원해주기보다 현실에 맞춰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를 종용하는 사회. 그 속에서 아이들의 특별한 재능들은 망가져 간다. 직업이라는 것은 생존과도 연관이 있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직업을 통해서 자신의 혼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태생부터가 인간에게서 났으며, 인간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같은 동족인 인간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일반 동물과 달리 다양한 지적 능력을 가진 인간은 그 지적 능력을 통해 다른 이와 교감하고 싶어 하며, 그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빠르다. 경제의 흐름도 매우 빨라서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가난했지만, 굶어죽지는 않는다. 뭐라도 하면 된다. 다만 자꾸 나보다 많이 버는 사람을 쳐다보면 현재의 일이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이지.
대학을 잘 나온다고 성공하는 것만도 아니다. 자신의 목표가 분명해야 졸업 뒤에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명문대만 가면 앞날이 편다는 것은 주객전도가 된 발상이다. 먼저 아이들의 꿈이 있은 후에 그 과정 속에 대학이 있는 것이다.

꼭 돈이 있어야 공부를 하는 건 아니다. 돈이 있어야 공부를 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아이들은 고민이 많다. 어른들의 말 속에서 지레 포기하게 된다. 지방 학생들은 서울 학생들을 동경하며, 서울에서도 강북은 강남을 부러워한다. 강남 안에서도 살고 있는 동네의 땅값과 집값, 부모가 몰고 오는 차량으로 계급이 정해져 아이들의 자존감은 상처 입는다. 과연 이 땅에 몇이나 자존감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인가. 어린 시절은 그렇게 멍들어간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당연한 것이다. 아이들은 죽음을 생각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서를 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꼭두각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선택하고, 책임 또한 자신이 지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살고 싶은가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과거로부터 미래까지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게 되며, 부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이루는가. 당장 내일 죽더라도 한이 없도록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면 아이의 눈빛이 달라진다. 자신의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아이를 대신해줄 수는 없다. 선택 또한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아이를 도와야 한다. 아이들의 삶에서 부모는 조언자이지, 관리자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다. 대신 부모는 조언자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기다려주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발생할 결과를 알려주고, 그래도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을 통해 아이가 인생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인간의 삶에 시련은 반드시 있다. 고통과 행복은 반드시 공존한다. 아이들에게 고통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끊임없이 힘든 일을 피하려 할 것이며, 끊임없이 힘들어 할 것이다. 시련에 부딪혀 해결하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는 인생의 선배로서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아이에게 중대한 말실수를 하는 부모를 많이 본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투자하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안 할 수가 있니?’ 아이들은 그 말에 엄청난 부담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죄책감은 고통을 가져오며, 아이들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좌절을 하게 된다. 부모는 끊임없이 주는 존재이다. 사실 그런 말을 하는 부모도 정말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바라서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니까 힘들어도 일하면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다. 그런데 ‘투자’라는 말은 참으로 인간미가 없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투자’라는 말에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기보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니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자신의 인생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지 못한 채 멍한 눈빛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가 힘들어하니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부모가 만들어 준 인생의 규격에 자신을 맞춰가게 된다.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왜 힘든지 모른다는 점이다. 왜 공부가 안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절대 멍청하지 않다. 어른들은 스스로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된다. 어린 시절에 수많은 진지한 고민이 있었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단지 조금 미숙했을 뿐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었다. 그 통찰력이 살아 있는 한 학문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뇌가 굳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이 생겨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모순 속으로 들어가 있으니 세상의 모순과는 동떨어진 순수한 지식 체계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공부하기 시작하면 아이들만큼 영민하게 머리가 돌아간다.

날개가 잘린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역시 날개가 잘려 있는 것이다. 꿈이 뭔지 인생의 소망이 무언지 어른들도 누르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뛰는 것을 가르쳐주고 가장 빨리 뛰어야 한다며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이다. 사실 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받은 선진 교육 국가의 아이들은 세계를 훨훨 날아다니고 있으며, 그 아이들은 곧 국력과 연결된다. ‘지식’이 힘이 되는 사회이며, 부가 되는 사회가 왔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 재능을 키워주어야 한다.

우리가 모두 날아갈 수 있다면, 한 명이라도 날고 있다면 그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서 아이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함께 날자고 잡아 이끌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현실을 모른다고 다그치는 순간, 아이들은 나는 것을 포기하고 아예 좌절에 빠져 기어간다. 그 중에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뛴다. 그러나 사실 그 순간 천재는 망가지는 것이다.

모순 속에 타협해 안주하는 순간 아이들의 머리는 굳어간다. 그렇게 해서 명문 대학에 가더라도 그 후에는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꿈을 위해 진로를 변경해 다시 시작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중·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라면 인생에서 그렇게 시간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며,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그들에게 혼을 심어주어야 자신의 뿌리를 알고 부모에 대한 공경을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한 존재가 되고, 더 나아가 나라를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며 인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혐오하며 대한민국을 떠나거나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 공부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뿌리를 위해 무언가를 이루는 존재로 자라날 것이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뿌리가 있다. 부모가 없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겠는가. ‘나’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 내 위에 수많은 조상이 있었던 것이며, 내가 편하게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수많은 우리의 조상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옛날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허다했으며 이름 모를 병으로 죽는 이도 많았다. 그러한 힘든 과정을 극복해나가며 세상은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고통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밥 먹고 사는 게 힘들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끝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세상에서 부글부글 끓는 화병을 참지 못해 힘든 것이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보면 그렇게도 분노하는 세상이 아래를 내려다보면 끝없이 겸손해진다.

‘부자’라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며, 명문대를 나온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분노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아이 스스로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도록 만들며,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나와 똑같은 존재인 이웃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아야 인간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자살률도 줄어들 수 있다. 내 아이는 안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힘들다.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힘들듯이. 아이들이라고 작은 고통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 최대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주자. 그들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것을 위해 대학에 가야하는 당위성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해주며, 인생 전체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시대는 지났다. 학교 공부가 부족하다면, 인터넷을 뒤지면 가격이 매우 싼 강의부터 수많은 무료강의들이 있고, 질 좋은 참고서들이 서점에 즐비하다.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물가로 데려가지 말고, 스스로 목이 말라 물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물을 찾을 때 물이 어디 있는지 조언해주는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

돈 많은 집 아이들만 미술을 하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과 달리 많은 문화예술 산업이 발달해 있고, 싼 가격으로 미술관을 찾을 수 있다. 미술 작품을 보고 와서 모작을 해 보고 열정을 가지고 대학의 교수님을 찾아가거나 미술가를 찾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라. 하지만, 그 미술가나 교수님이 만남을 거부한다고 그들에게 서운해 하거나 꿈을 접는다면 진정한 열정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들의 열정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면 항공사에 이메일을 보내보고, 외교관이 되고 싶다면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외교담당 부서에 문의를 해보는 것이 더 빠르다. 전문가의 조언이 가장 좋은 것이다.

다만, 우리는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조차 방법을 모르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진정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인생 선배인 것이다. 또한 그 전문가가 답을 거부하였다고 해서 서운해 하며 욕하는 것을 가르치면 안 된다. 그들은 바쁘며, 우리에게 답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은 ‘나’ 중심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들’ 중심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날개 짓으로 바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와중에 반드시 이끌어주는 존재가 있을 것이니, 열정을 가지고 덤벼든다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며,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험악한 세상이 온다면, 그 얼마나 힘든 세상이겠는가. 아이들에게 지금보다는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며, 어른들 마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다.

아이들은 날고 싶어 한다. 아니, 우리들은 모두 날고 싶어 한다. 불우한 시대의 불우한 천재 작가였다는 이상의 ‘날개’는 이렇게 끝이 났다. 세상의 모순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그는 결국 이렇게 외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하지혜 

현) 비타에듀(www.vitaedu.com) 인터넷 강사

 신설동 비타에듀학원 출강

케이스 2007학습지 해설강의

전) 강남 정일학원/ 부평 코리아에듀학원

     송파, 중계 이상수학원/ 스카이에듀학원

중곡동 전문가집단학원 등 다수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