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름휴가를 조금 일찍 다녀왔습니다. 동남아시아 필리핀에 가족이 살고 있어 휴가지 결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티켓 예매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뒤 지난 21일 필리핀 마닐라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요. 4시간을 날아 마닐라에 도착하자 언니와 조카들이 저를 반겼습니다. 가족상봉을 마치고 언니가 짜온 일정에 따라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로 여행을 온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마닐라 베이'입니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은 필리핀 관광 책자마다 단골로 소개되는 마닐라 대표 관광지입니다. 몇 해 전 처음 필리핀에 방문했을 당시, 낮에 이 곳을 찾았던 게 기억나 이번에는 저녁시간을 공략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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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마닐라의 대표 관광지 '마닐라 베이'는 아름다운 석양으로 유명하지만 저녁 시간 몰려드는 어린 노숙자들의 구걸 행위 탓에 우범지대가 됐다. 사진은 대낮 마닐라베이의 풍경. = 이보배 기자 | ||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닐라 베이에 도착했는데요. 어쩐 일인지 필리핀에 거주하는 언니는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남편과 형부, 그리고 두 명의 어린 조카와 차에서 내려 마닐라 베이를 걷기 시작했는데요.
마닐라 특유의 더운 바람과 바다 냄새를 맡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마닐라 베이는 라이브 공연이 넘쳐나는 노천바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마닐라 베이는 노숙자와 노점상이 가득한 한풀 꺾인 관광지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이런 생각에 잠시 잠긴 바로 그때,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걸하는 어린이들이 우리 가족을 따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닐라 베이 투어에 앞서 들은 주의사항 중 하나가 바로 노숙자들이 구걸을 해도 절대 동전 한닢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에 돈을 건넸다가는 순식간에 주변의 노숙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한 명, 두 명 따라오기 시작한 노숙 어린이들은 어느새 7~8명으로 불어났고, 딱한 표정으로 구걸하는 것을 넘어서 제 남편과 형부의 양쪽 손에 엉겨붙어 주머니에 손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발생한 돌발상황에 어린 두 조카는 겁에 질려 울기 직전이었고,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제 심장도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가 탄 자동차로 내달려 탑승하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제서야 언니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줬습니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지만 노숙자들이 마닐라 베이로 몰리면서 과거의 명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범지대로 전락해 대낮이 아니고서야 이 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는 설명도 보탰습니다.
순간, 국내 서점에 가득했던 필리핀 관광 안내서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 저 책 할 것 없이 마닐라 베이를 필리핀의 대표 관광지로 소개할 뿐, 책 어디에도 마닐라 베이가 우범지역이라거나 위험하다는 설명이 없었죠.
책 소개 내용만 믿고 저녁 시간 마닐라 베이를 찾았다가 저처럼 노숙자들의 습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건장한 남성도 꼬맹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주머니를 뒤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판국에 더 이상 마닐라 베이를 필리핀 관광명소로만 소개하는 것은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