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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의 풍문으로 들었소] 영남제분 주인이 바뀐다는 그 말을

이수영 기자 기자  2014.06.24 13: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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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 바로 '풍문(風聞)'입니다. 유행가 속 풍문은 속칭 '썸 타던' 상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씁쓸한 통보로 그치지만 주식시장에서 '풍문'의 위력은 가히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급 파괴력을 과시하곤 합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거래소는 상장법인과 관련된 풍문이나 보도의 사실 여부 확인을 요구하는 '조회공시'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거래소의 조회공시 통보를 받은 기업은 1일 이내에 응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업경영에 가장 '은밀한' 거래 내역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조회공시요구(풍문 또는 보도)'의 독해법은 따로 다룰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풍문으로 들었소. 영남제분 새 주인이 농심이란 그 말을.'

코스닥상장사이자 부산 향토기업인 영남제분(002680·대표 배비용, 류원기)이 23일 천국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이미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에 연루되며 지옥 경험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날 개장과 동시에 주가가 상한가로 직행한 것도 잠시, 장 마감 때는 전일대비 9.83% 폭락한 2155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주가가 널뛰기를 한 것은 전날 한 매체가 '영남제분 최대주주가 보유지분과 경영권을 농심에 매각하는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 직후였습니다. 인수합병(M&A) 이슈가 직접적인 호재로 작용한 예입니다.

◆60년 향토기업, 도덕성 논란에 매각설 봇물

23일 개장 직전 코스닥시장본부는 이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답변 시한은 이날 오후 6시까지였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주가가 고공행진한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이를 부인하는 답을 내놨습니다. 정확히는 '최대주주 지분 및 경영권 매각에 대해 추진하고 있는 사실이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농심도 '사실무근'이라며 강력 부인했으니 이번 소동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까요?

주식시장의 풍문은 참 요상합니다. 애매하고 속내는 복잡하며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완전히 또는 일부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영남제분 최대주주의 지분매각설도 다시 뜯어보겠습니다.

영남제분은 올해 3월 말 현재 류지훈 부사장이 지분 30%(624만주)를 차지한 최대주주입니다. 류 부사장의 부친이자 총괄대표를 맡은 류원기 회장이 13.55%(281만8195)를, 43년째 회사에 재직 중인 배비용 대표는 제분사업부 관리를 담당하며 2.17%(45만359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류 회장의 친동생인 류원하씨는 0.85%(17만7661주)로 지분율은 미미하지만 계열사 대표를 지내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일단 회사의 지역 기반인 부산 경제계에는 영남제분 매각설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언론이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을 재조명하며 류원기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는 물론 영남제분도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었죠.

성난 여론 때문에 주요 거래처들이 줄줄이 거래를 끊었고 이는 결국 실적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69억3000만원으로 전년대비 7% 이상 줄었고 영업이익은 13억9000만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당기순손실도 25억9000만원으로 적자폭이 더 늘었습니다. 또 영남제분은 지난 11일 부산지방국세청으로부터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대비 3.34%에 해당하는 15억9660만원의 추징금을 부과받기도 했습니다.

악재가 겹치면서 당연히 M&A 이슈가 업계에 불거졌고 밀가루 회사인 영남제분이 과자·라면회사인 농심과 손을 잡을 개연성은 충분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오너일가가 경영에서 손을 떼기 위해 올해 초 핵심 거래처인 농심에 지분 및 경영권 인수를 타진했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소문도 돌았고 최근 기사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검토 중=사실" 애매한 화법에 속는 투자자

물론 영남제분과 농심 모두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은 상당히 강경한 입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 풍문이 실체가 없음에도 높은 신뢰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해당 기업들의 '애매한 화법' 때문이니까요.

M&A나 유상증자 이슈와 관련해 상당수 기업들은 '검토 중'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실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실제 2013년 하반기 코스닥시장본부가 조회공시를 요구한 51건 가운데 '검토 중' 또는 '미확정'이라고 밝힌 32건 가운데 상당수는 풍문이 현실로 구체화했습니다.

작년 11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인수추진설이 돌았던 로엔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답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인수를 공식화했죠. 비슷한 시기 최대주주 지분 및 경영권 매각 추진설에 대한 조회공시요구를 받은 피앤텔 역시 '검토 중'이라는 답이 무색하게 1주일 만에 최대주주를 싱가포르 소재 컨설팅업체로 변경하는 등의 주식양수도 계약 체결을 공시했습니다.

심지어 이번 영남제분처럼 '사실무근'이라고 버티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상장사도 있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2011년 녹십자생명 인수 추진설에 대해 '추진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두 달 만인 같은 해 10월 얼굴을 바꿔 녹십자생명을 거머쥐면서 '거짓 공시' 논란에 불을 붙인 바 있습니다.

2008년 최대주주 지분 매각설이 제기됐던 골든오일 역시 비슷한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매각설이 제기되자 회사는 '지분매각 계획이 없으며 광구확보를 위해 유상증자가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골든오일은 대규모 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지분매각은 아니지만 유상증자라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넘긴 것입니다.

2007년 G마켓은 '같기도' 조회공시를 역이용해 M&A 호재를 오랫동안 누린 예입니다. 당시 모기업인 인터파크는 2007년 12월 '미확정' 공시를 내고 몇 달 동안이나 같은 답을 매번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3월 '매각 중단'을 선언했다가 5개월 만에 다시 '미확정' 공시를 남발했고 계약 사흘 전까지도 '확정된 바 없다'는 엉터리 공시를 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영남제분을 둘러싼 지역 내 평가나 최근 실적, 그간의 선례를 감안한다면 이번 조회공시 부인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