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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해부] 하이트진로 ①태동과 성장…"100년 숙성, 글로벌 자신감"

2024 주류업계 최초 100년 기업 등극…국민 '희로애락' 역사와 함께

전지현 기자 기자  2014.06.20 09: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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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에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하이트진로를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하이트진로가 100년 기업을 앞두고 글로벌 주류기업으로서 성장을 위해 시장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올해로 소주사업 90주년, 맥주사업 81주년을 맞았다. 10년 후인 2024년에는 국내 주류업계 최초로 100년 기업에 등극하게 된다.

   하이트진로 BI. ⓒ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 BI. ⓒ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2011년 9월1일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해 새롭게 출범한 국내 최대 주류기업이다.

국내 맥주업계와 소주 업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 간 결합이며, 맥주와 소주시장 국내 1위 기업 간 통합으로 '하이트 신화', '참이슬 신화'에 이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류기업으로서 글로벌시장에서 '제3의 신화창조'를 준비하고 있다.

◆2011년 9월 국내 최대 주류기업 출범

1933년 설립된 하이트맥주는 81년, 1924년 설립된 진로는 9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10년 뒤에는 국내에도 100년 주류기업이 탄생한다. 오랜 역사만큼 맥주와 소주에서 국내 1위를 지켜오는 두 회사는 이미 세계적인 양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맥주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국내 하이트진로의 역사가 시작된다. ⓒ 하이트진로  
조선맥주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국내 하이트진로의 역사가 시작된다. ⓒ 하이트진로
하이트맥주는 1933년 당시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조선맥주주식회사'라는 사명으로 설립됐다.

1993년 나온 신제품 '하이트'는 돌풍을 일으켜 1996년 맥주업계 1위에 올랐으며, 1998년에는 회사명을 하이트맥주(주)로 변경했다. 2005년 7월 (주)진로 인수로 국내 최대 주류전문 그룹사로까지 발돋움했다.

진로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됐다. 1954년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발족된 서광주조가 오늘날 소주의 대명사 두꺼비 상표 '진로'를 출시했으며,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40년 이상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진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이후 화의와 법정관리를 거쳐 2005년 7월 하이트맥주(주)에 피인수됐다. 2011년 9월에는 하이트맥주와 합병해 국내 최대 주류기업 하이트진로(주)로 출범했다.

◆한국 최초 맥주회사 '조선맥주'

서양식 음주 문화 효시를 이뤘다할 만한 맥주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 개항 이후 서울과 개항지에는 조선 상권을 넘보는 러시아, 일본 등 각국 상인들로 들끓었다. 개항지에 일본인 거주자가 늘면서 일본 맥주들도 유입됐다. 초기 '삿포로'를 시작으로, 1900년을 전후로 '에비쓰' '아사히' '기린'이 들어왔다.

당시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계층이 일부 부유층과 상류층에 한정됐었다. 1905년까지도 국내 맥주 소비량은 연간 1570㎘(15만7000상자, 1상자=500㎖x20병)에 불과했으나 한일합방을 전후로 일본회사들이 경성출장소를 내면서 소비가 크게 증가, 1920년대 들어 수입 주류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이트진로는 전세계 50여 개국에 맥주, 소주, 위스키, 막걸리, 매실주 등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전세계 50여 개국에 맥주, 소주, 위스키, 막걸리, 매실주 등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 하이트진로
국내 최초 맥주회사는 1933년 당시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준공된 조선맥주주식회사. 조선맥주는 자본금 600만원, 공장규모도 10여만평으로 당시에는 미쓰코시 백화점보다 높은 5~6층 높이의 건물로 장안의 화제였다.

조선맥주는 맥아제조 설비를 설치하고 계열기업인 유리병제조회사도 설립해 원자재 공급체계를 갖췄다. 1945년 해방 후 맥주공장들도 미군정의 관리 하에 들어갔고 1950년 6․25로 영등포공장이 심각한 전화를 입게 된다.

조선맥주는 전쟁 중인 1952년 6월17일 피난지 부산에서 민간에 불하됐다. 상호는 조선맥주주식회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상표는 잠시 '금관맥주(金冠麥酒)'로 불렀다가 '크라운맥주'로 바꿔 생산됐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1967년 현 박문덕 회장의 선친인 고 박경복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박경복 회장은 부산에서 주정, 소주 등을 생산하던 대선발효공업(지금의 대선주조의 모체)의 회장을 지냈다.

박경복 회장은 절약 등 각고의 노력 끝에 회사를 일으켰다. 1968년 국제식품심사위원회(ICSP) 최우수금상을 수상하며 크라운맥주 성과를 높였다. 1971년에는 영등포공장의 시설을 2배로 늘리고 1973년 8월에는 기업을 공개, 주식을 상장했다. 이후 조선맥주는 1991년 3월 박경복의 둘째 아들인 박문덕이 사장에 취임, 본격적인 2세 경영체제로 돌입했다.

1978년에는 도산한 한독맥주(이젠백맥주)의 마산공장을 인수, 연간생산능력을 34만㎘로 늘린다. 1989년 전주공장, 1997년에는 강원공장을 건립해 현재 강원공장, 전주공장, 마산공장 3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기쁠 때 슬플 때 국민과 함께 한 '진로', '두꺼비' 

소주의 대명사 진로는 우리 서민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성장해 온 대표적인 장수 히트상품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엔 언제나 두꺼비 진로가 있었다.

1924년 탄생한 '진로'는 제조사간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40년 이상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1998년에는 국내소주사상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참眞이슬露'(現 참이슬클래식)를 시판해 기업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2006년 8월 출시된 '참이슬 fresh'(現 참이슬)가 대한민국 대표소주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1973년 진로와 조선맥주까지 기업 공개를 시작으로 1977년 진로소주의 일본시장 진출, 주류업계 최초 주류연구소 설립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1973년 진로와 조선맥주까지 기업 공개를 시작으로 1977년 진로소주의 일본시장 진출, 주류업계 최초 주류연구소 설립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 하이트진로
진로는 해외시장에서도 호평받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1998년 단일품목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진로는 2001년부터 증류주 부문 판매량 세계 1위에 기록되고 있다.

'진로(眞露)'의 역사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眞泉釀造商會)에서 시작됐다. 진로라는 제품이름은 생산지와 제조공정에서 따온 것으로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眞'과, 순곡(純穀)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해 '露'를 선택했다.

창업기 진로의 상표에는 원숭이를 사용했는데, 서북지방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심벌로 선택된 것이었다. 이 상표는 진로가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한 신길동 시대에 와서 두꺼비로 바뀐다. 진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1년 부산에서 '금련(金蓮)'으로 1952년에는 '낙동강'이란 이름으로 생산되기도 했다.

1954년 6월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발족된 서광주조(주)는 오늘날 소주의 대명사 두꺼비 상표 '진로'를 생산 판매한다. 두꺼비 진로는 급속한 판매량 증가와 함께 소주 대명사가 됐다. 진로가 주류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된 것은 품질 및 판매 전략의 우수성 때문이었지만 선진적인 광고판촉 활동도 주효했다.

1959년말 진로는 국내 최초의 시엠송(CM Song)이자 그 시절 최대의 히트곡이었던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되는 '진로 파라다이스'를 통해 국내 광고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국내 주류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진로CM은 라디오와 TV를 통해 선보이며 대유행을 한 공전의 히트곡으로써 당시 군인들은 물론 일반 체육대회의 응원가로 불리기도 했다.

◆참이슬로 소주시장 역사 바꿔

(주)진로가 1998년 10월 국내시장에 첫 선을 보인 참이슬 소주는 25도라는 상식을 깨며 소주시장의 '저도화'를 주도했다. '진로'에 이어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참이슬'은 소주는 '독한 술'이라는 이미지를 '부드럽고 깨끗하게' 바꿔 놓았다.

참이슬은 대나무 숯의 효능을 소주 제조과정에 접목시켜 잡미와 불순물을 제거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맛이 깨끗하면서도 숙취가 없는 제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대나무 숯 여과공법은 '죽탄과 죽탄수를 이용한 주류의 제조방법'을 내세워 기술특허를 취득, 제조방법상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종전의 소주 제조공정과는 다른 신공법으로 평가받았다.

출시당시 23도 제품으로 출발한 '참眞이슬露'는 리뉴얼 과정을 통해 2006년 20.1도로 도수가 낮아졌다. 2006년 8월 출시된 '참이슬 후레쉬'(現 참이슬 18.5도)와 함께 국내 소주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참이슬은 선풍적인 인기로 판매량이 급증해 출시 2년 만에 단일 브랜드로 전국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참이슬은 기업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고 기업회생과 제2도약의 견인차 역할을 한 최고의 효자상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