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길고도 짧았던 황금연휴가 끝난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우연히 소화기를 보게 됐습니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텐데, 오늘따라 유독 눈길이 가더군요. 화재와 같은 긴급상황에 비상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소방용품은 각종 건물 및 지하철 등 우리 주변 곳곳에 비치돼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 상황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발생합니다. 작은 불씨로 시작한 화재가 인명을 앗아가고, 부실 공사 탓에 삶의 보금자리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갈 때 우리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119에 신속히 전화를 하는 것이겠죠.
이때 소방관들은 무너지는 건물 또는 화염이 짙은 현장 등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이 산재된 곳들에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됩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나오는 사람도 소방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직업 중 하나입니다.
이 같은 숭고한 희생정신 때문에 미국에서 소방관은 가장 존경받고 인기있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슈퍼 히어로, 영웅과 같은 존재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방관은 기피 직업으로 인식됩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에 항상 노출됐지만 이에 대한 처우 개선은 미약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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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이 국가안전처로 흡수 통합돼 소방본부가 되는 정부 조직개편안에 대해 소방관 및 여야 의원들은 기관장 지휘 또한 한 계급 격하되는 등 소방방재청이 사실상 해체되는 것이라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 최민지 기자 |
전국 소방차량 5600여대 중 노후 차량 비율은 20% 이상이며, 연평균 내용 연수 경과 차량은 580여대로 노후차는 계속 증가세라고 합니다. 공기호흡기·방화복 등 필수 개인 안전장비는 보유 기준 대비 4.5% 부족하고, 노후율은 16.5%에 이른답니다. 소방관 본인의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안전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우리나라 소방관 순직률은 연평균 7명인데 이는 일본의 2.6배, 미국의 1.8배라고 하네요.
상황이 이렇지만, 우리나라 소방관들이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궐기했다는 일은 접한 기억이 없네요. 프랑스·영국·그리스 등 해외 곳곳에서 소방관 파업사태는 여러 차례 접해봤지만, 우리나라 소방관들은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죠.
이 때문일까요. 소방관 릴레이 1인 시위와 소방방재청 해체 반대 서명이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민들이 '119의 119'가 돼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한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실시되는 소방방재청 해체 반대서명에 7만여명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으로 정부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소방방재청을 이에 편입시킨다는 방침을 내놨는데요. 국가안전처는 장관 아래 정무직 차관 1인을 두고, 소방본부와 해양경찰 본부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에 소방방재청이 소방방재본부로 사실상 강등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안전행정부는 "소방조직과 기능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소방조직 기능과 인력을 대폭 확충할 예정"이라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이해는 물론 여야 의원들의 공감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서명과 1인 시위를 응원하는 국민은 점점 증가하는 가운데 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도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이날 김 의원은 "이번 개편안에서 중앙의 방재청만 국가안전처에 편입시켰는데, 소방관 전체 3만9000여명 중 99%가 지방직 공무원"이라며 "소방조직 통폐합과 일어난 문제 등 일선 소방관들의 의견이 반영된 최선책인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30일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이 같은 정부 개편안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없애는 꼴'이며 졸속 대책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화제를 잠깐 돌려, 소방관 하면 떠오르는 시(詩)가 있는데요. 1958년 미국 소방관인 '스모키 린'이 쓴 '어느 소방관의 기도'입니다. 이 시에는 3명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자책감이 그대로 반영돼 있죠. 홍제동 화재 사건으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도 이 시가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 소방관들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