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인물론'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당위성이 부각됐다. 실제로 그런 조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특정 정당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남다른 애정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먼저 광주광역시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출발 국면에서 이른바 안철수측 인사 챙기기를 위해 '전략 공천'이 단행됐다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현직 광주광역시장으로 경쟁력을 자신하던 강운태 후보는 극렬히 이에 반발하며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김부겸 전 의원의 경우에는 경북고 출신으로서 연고지인 대구광역시장직에 출사표를 던진 경우다. 각기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의 아성인 지역에서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깃발 메리트' 없이 인물론으로 승부를 치른 경우다.
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고전하면서, 두 지역의 일명 지역(기반)정당을 사랑하는 강한 정서의 크기가 확인됐다는 풀이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두 거대 정당에 텃밭이자 심장인 각각의 도시가 경고음을 보내는 상황이 불발됐다는 해석으로도 연결된다. 앞으로 이들 지역정치는 물론 중앙정치의 흐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정희 끌어안기+남부 신공항 김부겸&경제 살린 현직시장 메리트 강운태 '그러나?'
김 후보는 지난 3월, 대구시장 출마 선언과 함께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 자리잡은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옮겨가면 생길 여유공간 즉 20만여㎡의 도청 터를 박정희 컨벤션센터로 꾸민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고 박정희 대통령=경제개발의 시대 주역'이라는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하는 제스처인 동시에, 박통 시대의 공과를 판단, 공적에 대한 선양도 게을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부각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합을 이루려는 목적이라고 해석돼 눈길을 끌었다. 김 후보가 민주화 운동 이력으로 고생을 한 점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상당히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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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후보가 3일 막판 유세에 나선 모습. ⓒ 김부겸 후보 캠프 |
공약 준비나 지역정서에 대한 밀착면에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지역 아이돌(우상)을 끌어안는 전략을 펴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김 후보는 옛 한나라당 간판으로 경기 군포에서 당선된 바도 있지만, 이후 탈당하면서 옛 민주통합당 간판을 걸고 대구로 내려와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 이때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과 격돌, 40.4%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선전'을 기록했다.
이번에 인물론이 제법 맹위를 떨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근거가 여기서 출발하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면서 이 기대가 전혀 틀린 게 아니라는 점을 보였다.
하지만 김 후보의 이 같은 대구 짝사랑은 결국 씁쓸한 결과를 받아들게 됐다.
특히 공항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구가 이번에 다시 '새누리당 출신 시장'에 마음이 기우는 모습을 보인 점은 충격적이다. 김 후보가 공항 유치 문제에 의욕적으로 의견을 표했는데, 새누리당 중앙당은 사실상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선언해 크게 대조되는 국면이 됐다.
이는 새누리당이 부산시장 후보 지원에 나서면서 공항 문제를 무기로 삼았던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즉 다소 안전한 대구 대신 부산에 떡을 주는 판단을 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연히 대구시민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표심으로까지 직접 연결되지는 못했던 셈이다(새누리당의 과감한 부산으로 여력 집중 베팅이 적절한 계산이었다는 결과론적 해석도 가능).
강 후보의 경우는 광주광역시장을 관선으로 이미 한 번 지낸 바 있고, 민선 시장으로서 일하고 있다는 현직 메리트가 강했다. 특히 각종 스포츠대회 유치 등으로 기염을 토했고, 이에 앞서 광주 비엔날레 탄생에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또 경제적으로 광주 발전에 기여하는 여러 성과를 냈다는 자부심도 강한 편이다.
윤장현 전략공천론에 반발하면서 탈당한 이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는 듯 보였다. 이번에 이것이 역전된 상황이 빚어진 구도가 만들어진 데에는 시민들의 정서가 '결국엔 새민련' 혹은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기울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국 여러 조사에서 도사리고 있던(후반으로 갈수록 그 비중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20%가량의 부동층이 일을 낸 셈이다. 이들 부동층의 향배는 DJ 시절의 묻지 마 투표까지는 아니어도 결국 정당에 상당한 정서적 호소를 받는 쪽으로 기울었던 셈이다.
이용섭 의원(역시 새민련 공천을 받아 광주시장에 도전을 하려 했으나 전략공천 국면으로 흐르자 탈당한 경우)과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내는 정치적 드라마를 일궜다는 점도 광주의 정서에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치적으로 '강운태 vs 이용섭' 구도는 호남의 정치인물 관찰에서 상당한 흥미 요소로 받아들여져 왔다. 두 사람은 관료 생활을 오래 했고 광주를 정치적 탯자리로 삼고자 한다는 공통 요소가 있으나 한 사람은 관선 광주시장 (이후 민선으로도 선출) 등 일선 행정 현장 이력이 두드러지고, 이 의원은 여러 장관직 등을 거친 점에서 주로 '중앙' 경험이 눈길을 끈다는 차이가 있다. 학력면에서는 오히려 강 후보가 명문, 이 의원이 지방대 출신으로서 고시를 통해 입신한 경우이나 이 같은 이력차로 인해 이미지가 오히려 소탈 대 젠틀(이론가)로 형성되는 다소 흥미로운 상황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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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태 후보는 현직 시장으로서, 광주를 LED 수출 전략기지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에 착수해 적잖은 성과를 거두는 등 광주의 경제적 발전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 광주광역시 |
이처럼 두 사람은 어울리기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전략공천론이 갖는 문제점(광주는 새민련이 공천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을 지적하면서 이런 뜻을 널리 알리고 실제로도 의미있는 결과 도출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탈당파간 단일화'라는 어려운 합의를 이뤄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적 실험은 결국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을 챙기는 정서가 광주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성공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번 투표 표심, 당 간판에 기댄 '지역정가'에 폭주 면허 내준 셈?
공항 문제에 대구 표심은 아랑곳하지 않고(사실상 대구=무조건 안전한 새누리당 팬심 지역으로 본 셈) 부산쪽으로 전략 카드 집중하기를 한 새누리당 중앙당 태도라든지, 중앙의 정치 논리에 의해(안철수 진영 끌어안기가 필요하다 논리에서 출발한) 전략공천을 하는 대상지로 광주를 택한 새민련 사정은 다시금 '통과'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이 같은 선택을 유권자들이 해 줌으로써 두 지역의 정치 패턴은 과거 흐름을 당분간 답습할 여지가 커 보인다는 점이다.
지역의 정치인들은 토착정당의 우산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이 같은 특정정당에 소속되고 공천을 받을 수만 있다면 상당한 이점을 업고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높아질 전망이다. 지역정가에 대한 급격한 물갈이 신호탄이 불발됐기 때문에 이 같은 도전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시도될 가능성도 약해지고 개혁의 추동력 역시 약해진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역 민심과 불만을 중앙에 전달하는 기능이 약해진다'는 장기적 부담감을 '우리를 대표하는 어느 당에 연결고리를 가져야 발언 채널이 그나마 유지된다'는 당장의 불안감과 맞바꾼 선거를 치른 셈이다.
두 지역이 앞으로도 두 거대한 정당의 핵심적 지지세력으로 각각 인정받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로써 얻을 바가 더 클지, 실제로는 손해를 보는 것이 많을지에 따라 앞으로 이들 지역에서든 다른 지역에서든 '인물론'이 발을 붙일 수 있을지가 좌우된다고 하겠다.
한편 두 지역이 내놓은 이번 판세는 결국 새누리당과 새민련 두 정당 중 어느 하나가 극심한 패배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나름대로 힘을 보탰다는 의미도 있다. 새누리당은 서울을 내주면서도 수도권에서 상당한 표심을 확인했고 영남권에서 안정적인 완충효과를 얻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정권 심판론 부상'이라는 표심을 일부 확인했지만 그래도 최악의 성적표를 피한 셈이다.
새민련 역시 안방을 잃는 데다 안철수 정치력 실종이라는 국면을 맞으며 추락하는 상황만은 피했다. 만족스럽지 못하나 서로 일정한 실속을 차리는 상황을 맞았다. 두 정당이 '적대적 공존'을 당분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인물론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될 정치인이 성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김 후보나 강 후보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가 이 같은 험난한 기상 조건에서 계속 꽃씨를 뿌리는 일을 반복할 수 있을지에 이들의 개인적인 정치적 앞날은 물론 한국 정치문화 발전의 가능성이 달려 있다. 명확하고도 가혹한 한계 앞에서도 다시 이들의 분투가 계속될 것인지를 장기전으로 지켜볼 필요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