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4.06.01 09:01:05
[프라임경제] 광주. 1980년 이후 한국 정치사의 가장 큰 비극을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은 도시. 이후 여여간 수평적 정권 교체 성공까지 정치적 토대가 되어준 광주는 민도가 가장 높은 곳, 정치적 관심도와 주인의식이 가장 고양된 지역의 대명사로 인식돼 왔다. 다만 이 같은 역사는 뿌리 깊은 특정 정당 지지세와 결부됐다. 또 이것이 도가 지나쳐 '(특정 정당) 깃발만 들면' 혹은 '지팡이만 꽂으면' 당선되는 '이상한 동네'로 지칭되며 악명을 날리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사를 견인하는 원동력을 공급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치문법은 개혁하지 못하는 게 광주의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이 같은 패턴이 근래 깨지고 있다. 광주 및 호남 전반에서 '묻지 마 지지 현상'의 공고한 벽에 금이 가는 상황은 이미 예전부터 감지돼 오고 있었다. 더욱이 이런 바닥 민심의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촉발된 상황에 시선이 쏠린다. 바로 '윤장현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던 광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이 받을 후폭풍 문제다. 이 문제는 강운태 후보, 이용섭 후보와 윤장현 후보 중 누가 공천장을 받는가의 갈림길에서 광주에 기반을 둔 일단의 의원들이 윤 후보 지지를 선언한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강운태 vs 윤장현 구도'에서 행여나 강 후보가 당선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전까지의 여러 조사들을 보면 이 같은 가능성을 상당히 고려해 봄직 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주제는 광주 시민들은 물론 중앙 정가 주변과 일반 국민들 역시 입에 올리기 좋은 화제다. 겉은 그야말로 누가 줄을 잘못 섰다가 쪽박을 차는가의 호사가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이나, 속살은 '정치적 도의 문제'와 맞닿는다. 이후 어떤 형식으로 교통정리가 되든 광주가 정치적 태풍을 겪으면서 여러 모로 큰 '퀀텀 점프(대도약)'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부분도 시선을 끌어모은다.
◆강운태+이용섭 아름다운 단일화, 새민련 정권교체론 깰까
강 후보와 이 후보가 윤 후보의 '전략공천'에 극렬히 반발, 당적을 박차고 나선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이후 합의를 통해 강 후보를 단일화 후보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무소속인 강 후보가 새민련(옛 민주당)의 정치적 심장인 광주 도백 자리에 도전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현직시장 메리트를 한 손에 쥔 강 후보는 다른 손엔 '아름다운 단일화'라는 정치적 도의론을 쥐고 있다.
단일화를 성사시킨 무소속 강운태ㆍ이용섭 후보가 28일 유세차에 올라 강운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김성태 기자 |
그런 반대편에는 제 1 야당인 새민련의 박근혜 대통령 심판론과 정권 교체론이 있다. 최근 광주를 찾은 김한길 새민련 대표가 "광주에서부터 새로운 변화가 시작돼야 총선에서도 이길 수 있고 2017년 정권교체도 실현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 점이 이를 대변한다. 또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이 "2017년 정권교체와 대선승리를 위해 안철수 대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광주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라고 진단해 '안철수 라인인 윤 후보 공천 불가피론'을 들고 나온 점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런 새민련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광주 표심이 윤 후보를 외면할 경우다. 이는 '새민련의 정권교체를 위해 (새민련은 새로 영입한 안 대표측을 챙길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사소한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정도로 광주와 새민련간의 유대 의식(냉정하게 말하자면 공범 의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름을 의미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국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김한길 체제'에 대한 심판이라든지 하는 중앙 시각의 결과물을 낳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그 비정상 국면의 돌출구에서 선봉장을 맡았던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론이라는 의미가 더 크므로 이부터 우선 짚을 필요가 있다.
◆윤장현 지지 국회의원, 불쌍한 행동대원 아닌 공범이다?
원래 '도구'에 지나지 않는 행동대원의 행동에는 관대한 판단이나 동정론이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광주에서 무소속인 강 후보가 광역시장실 열쇠를 거머쥐는 상황 속에서 일전에 윤 후보지지 선언을 했던 국회의원들이 동정론의 혜택을 입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광주 국회의원들이 특정 후보지지 선언이라는 무리수를 택한 이후 유력하게 나도는 의혹론에 시선을 줄 필요가 있다. 이들 중 일부가 이미 3선 의원으로 그 이후를 모색할 필요가 자의반 타의반 높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특히 광주라는 특수성이 문제다. 새민련 깃발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횟수 이상의 공천을 당에 요청하는 데에는 그만한 충성심 보이기가 필요하지 않냐는 해석이다(얄궂지만 일정 부분 유효해 보인다). 그런 와중에 '합당 국면에서 안철수 라인을 중앙당이 지방선거 공천이라는 방식으로 꼭 챙겨야 하는데', 그 챙길 '명분'을 축적하러 나서는 '악역'을 누군가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런데 맡아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 부담에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도 상당해 보인다. 바로 '강운태 재선 성공' 혹은 '이용섭 시장 탄생'으로 지역 상황이 정리되는 것보다는 '윤장현 시장 당선'을 일단 만들고 그 이후의 운신을 논하는 게 이들 여러 국회의원들로서도 여러모로 더 편하다는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의 두 정치인과 다음 번 지방선거에서 맞붙는 것보다 윤 시장을 '한 번 만들어 주고' 누군가 이에 도전하는 게 그래도 쉽다는 시나리오다.
이래서 이런 포지션에 놓인 중견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광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총대를 맨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바로 '윤장현 지지 선언 국회의원들을 구세대적 밀실 정치의 수혜자들'로 의심하는 논리다.
그리고 강 후보가 표심을 얻는다는 것은 지역 정치인들에 대해 그간 누적돼 온 실망이 이 같은 의혹을 촉매삼아 터지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 상황에 어설픈 동정론이 광주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각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랜 세월 '묻지 마 선거'라든지 '공산당식 지지율'로 표현되는 '이상한 광주(및 호남)'로 비판받아온 점을 광주 유권자들 스스로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구 민주당을 열렬히 외골수로 지지해 온 애정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정서가 과거엔 굳건히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애정을 어느 때인가부터 정치인들은 부조리한 정치공학과 계산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윤장현 불가피론 특히 지역 기반 국회의원들의 지지 선언 등이 실제 당선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그런 선거 결과가 나타난다면 오랜 세월 누적돼 온 앙금이 '이제는 우리부터 바뀌어야'로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총대를 맸던 자들에겐 폭풍? 폭풍 후 새 생태계 중심엔 이용섭 역할론?
그렇다면 이렇게 강 후보 시장 당선이 현실화돼, 내로라 하는 광주 대표 유력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금배지를 잃거나 크게 발언권을 잃어버리고 식물 정치인이 되는 사실상 실각 국면에서 새 광주 지역 정치판은 어떻게 구성될지다.
이 같은 공동화 현상에서 일정한 기둥을 받칠 기대주는 당연히 재선 시장으로 시정을 이끌게 될 강 후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홀로 그 역할을 다 떠맡을 수 없기 때문에 상당한 비중을 가진 정치인의 부상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번 레이스에서 강 후보와 경쟁하는 무소속 이병완 후보의 입지가 커질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가 정치 이력에서 보여 온 강점들이 새 혼란 국면에서 '구루(조언자 역이 가능한 지혜있는 인물)' 역할을 맡기에 적합한 요소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아울러 그의 진보적 이미지가 갖는 위상이 (비슷한 색채로 평가되는) 윤 후보가 낙선하는 경우엔 상대적으로 더 커지게 된다.
아울러 강 후보가 이번에 당선된다면, 그를 단일화라는 큰 틀에서 도운 이 후보의 비약적 수혜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다. '이용섭 대세론'이 그간 불붙지 않은 이유는 역시 드라마틱한 매력이 2% 부족한 모범생 이미지 탓이다. 여러 정부기관의 수장 즉 외청장과 장관직 수행 등 행정 경험이 풍부한 점, 당내에서 정책적 능력과 역할을 맡아온 유능한 정치인이면서도 세와 조직이 부족한 인물이라는 평이 함께 있었던 시절이 길었다. 그런 그가 탈당 그리고 단일화 등 각종 격변을 겪으며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그에게 광주 정가가 대거 개혁되는 국면이 실제로 제시된다면? 이런 상황은 그야말로 '퀀텀 점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