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한솔이(가명·38)씨. 그는 본인의 힘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재작년 말 한씨는 어렵사리 콜센터 상담사로 근무하게 됐지만 일에도, 낯선 환경에도 쉽사리 적응할 수 없어 몇 달 뒤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이런 와중에 우연히 서울특별시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를 알게 됐고, 장애여성에게 직업훈련을 통한 취업까지 알선해준다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결국 장애여성센터에서 컨택센터 과정을 수료한 그는 자신감을 얻었고 지난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한씨는 이제 업무 적응은 물론이거니와 회사 내 '행복 바이러스'로 통하고 있다.
지난 2012년 5월 서울시가 최초로 개관한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이하 센터)는 서울시 각 구에 있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장애여성을 중점으로 특화한 개발센터다. 이곳에서 장애여성들은 맞춤형 교육직업훈련을 통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애로사항과 지향점을 듣기 위해 29일 서울 강남 삼성동에 자리한 센터를 방문해 이시연 관장을 만나봤다.
◆특화분야 개척 나서…수화통역사과정 개설 예정
"처음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청소나 미화 등 단순 일을 원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꼭 이걸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생계와 직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교육받을 여건이 못 된다고 하는 거죠."
이시연 관장은 이런 경우 신속하게 일자리를 알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혹시 나중에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이러저러한 교육들이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처럼 센터는 청소나 미화를 비롯해 콜센터 상담사, 요양보조, 사무보조 등 여러 취업처를 연계해주고 있다. 꼭 4대보험을 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세탁소 일을 한다든가 집에서 소일거리로 수선 일을 하고 있다는 장애여성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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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행정사무원 양성교육 과정은 내달에도 개설할 예정이다. ⓒ 서울시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 |
센터는 현재 스타일리폼 아티스트 양성과정, 컨택센터 직업전문교육을 무료로 진행 중이며 유료 프로그램으로는 베이비시터 교육과정이 있다. 아울러 내달 30일엔 행정사무원을 개관할 예정이다.
행정사무원 양성과정은 어떤 일이든 컴퓨터를 기본으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해 마련했다. 컴퓨터 강의는 직업훈련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사무원 양성과정을 만들 돼 여러 과정을 거쳐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이를 통해 행정보조로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이 관장은 "작년부터 시행한 행정사무과정은 큰 호응을 얻어 장애여성들도 사무직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며 "그러나 기업은 비정규직 단순인력을 바라는 곳이 많고, 장애인을 채용해도 기본적 요구사항이 있어 기업과 장애여성의 눈높이가 맞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7월 초에는 수화통역사 양성과정을 무료로 진행할 계획이다. 네일아트를 배우러 온 청각장애인들과 수화통역이 어려웠던 점이 계기가 돼 개설하게 됐다. 수화통역사는 특화된 분야로 전문성을 요구하는 만큼 이런 과정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준비하게 된 것.
프리랜서를 원하는 이들도 많아 상황에 맞춰 파견을 나갈 수도 있다. 올해는 초급·중급·고급 과정을 운영할 예정으로 당장은 어려워도 2~3년 길게 봐 수화통역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관장은 "이제 설립 된 지 2년여가 흐른 장애여성센터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료와 경험을 쌓는 중"이라며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육 개설 등 나날이 발전하고 조율하겠다"고 강조했다.
◆"취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 개선"
센터는 장애·성별 여야를 막론하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운영 중이지만 장애여성 중점 프로그램인 만큼 장애여성의 비율이 80%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지체장애인들이 대다수며 청각장애,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도 있으나 아직 시각장애여성을 위한 서비스는 갖추지 못했다. 장애여성센터는 장애유형에 상관없이 포괄적인 지원을 위해 더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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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폼아티스트 교육을 진행 중이다. 스타일리폼아티스트와 행정사무원 과정은 100%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 서울시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 |
현재는 매월 70여명 대상의 교육을 펼치고 있으나 오로지 취업처만 문의하는 방문객들도 1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취업한 장애여성은 40여명이지만 막상 직장을 다녀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라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와 교육은 받겠지만 취업은 하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취업이 되기까지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며 "절반 가까이는 다시 일을 그만두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오래 버티기 힘든 이유 중 하나로 직업훈련 과정이 3개월 정도의 단기인 점을 꼽았다. 사회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고 교육수준도 높지 않은 편인데 3개월 후 취업은 인간관계를 직접 경험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이르는 시간으로 부족하다는 것.
그렇지만 여성가족부나 서울시에서 국비지원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간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때 시간 맞춰 매일같이 나와 수업을 들어야 하는 등 사실 3개월 과정을 끝마치기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조건에 조금이라도 맞서고자 센터는 취업을 나간 후에도 계속 연락을 취하며 사후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단순히 취업자 수를 실적의 잣대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만일 그만둔 경우 왜 그만두게 됐는지,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상담해주는 등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취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로드맵을 그려주고 있다.
◆배려 최우선한 홍보로 장애여성 변화 유도
"장애여성분들이 많은 걸 접했으면 해요. 그들도 자신감을 갖고 원하는 삶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이를 위해선 당사자도 주변인도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이는 사회적인 기반부터 받쳐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인식개선을 비롯해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해요."
이 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장애인들이 집 밖을 나서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버스를 탈 수 없고 지하철을 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을 배려한 시설물이 하나둘씩 늘듯 긍정적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여기에 부응해 센터는 더 많은 이들을 돕고자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여성 대부분 인터넷을 접하기 어려워 홍보가 힘들다. 이에 전단을 돌리고 주민센터에 포스터를 붙이는 등 12명의 직원은 고되지만 보람된 일이기에 기꺼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이 관장은 "장애라고 하는 게 수치스럽고 감춰야 하는 게 아니라는 의식이 생겨야 한다"며 "모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 한걸음만 다가와 준다면 우리가 이끌어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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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연 관장은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주는 지금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 하영인 기자 |
이들의 홍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이 날아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컨택센터 전문아웃소싱기업 엠피씨(대표 조영광)가 네일아트 현수막을 보고 '직원들의 복지차원에서 네일아트 직원을 고용하려 했는데, 가능하면 장애여성으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 이 관장은 자신이 소망하는 바에 대해 털어놨다.
"언젠가는 '센터를 만나서 본인의 삶이 바뀌었다'는 말이 듣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장애여성인력개발센터의 운영법인인 여성장애단체 내일을여는멋진여성의 허혜숙 이사장님이 제게 동기부여했던 말씀이죠." 한숨 고른 후 말이 더 이어졌다.
단 한 명일지라도 삶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