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주 취재차 서울고등법원에 들렀습니다. 비자금 조성 및 횡령·탈세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CJ 회장의 항소심 두 번째 공판이 진행됐기 때문인데요.
공판에 앞서 출석한 이 회장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못 알아볼 정도로 수척해진 모습에 제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한 눈에 봐도 건강이 염려스러웠습니다. 결국 이 회장이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법정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상태로 공판이 진행됐습니다.
상당히 수척한 몸으로 피고인석에 앉은 이 회장의 손은 수시로 떨렸습니다. 물론, 법원에서 아픈 회장님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선고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간이침대에 누워 재판에 임했고, 때때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6월 첫 공판을 앞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는데요. 2010년 담낭암 수술을 받았고, 올 초에는 전립선암이 발견되어 항암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 회장님의 공통점은 지난 몇 년 새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과 법원을 드나들거나 형을 산 인물들이라는 사실인데요. 때문에 일각에서는 "멀쩡하던 회장님들이 왜 검찰, 법원만 드나들면 아프냐"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쇠약한 모습으로 동정표를 얻기 위한 '꾀병'이 아니냐는 의심인 것이지요.
동정표를 얻기 위한 연기였다면 '작전 성공'입니다. 건장한 체격이었던 김승연 회장이 침대에 누워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통통한 체형이었던 이재현 회장이 49.5kg에 손을 떨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뭉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기나 꾀병이라고 하기에 직접 본 회장들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이와 관련 의료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회장들이 '갑자기' 아픈 게 아니라 그간 외부에 숨겨왔던 병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나 악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스트레스나 고민이 많은 자리이다 보니 지병이 있기 마련인데 긴 수사나 재판, 수감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수면위로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기업 오너의 병환은 기숙 유출이나 사업장의 대형사고에 버금가는 악재일 수 있습니다. 사업 전반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오너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가장 가까운 예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입원 소식이 알려지자 며칠간 재계는 요통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회장들은 평소에 수시로 건강을 체크 받고, 적어도 연 1~2회씩은 최고 수준의 종합검진을 받습니다. 주치의나 전문의료지식이 있는 비서진을 통해 회사나 자택 등에서 수시로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지요.
진료나 치료, 수술을 위한 병원과 의사의 선택은 또 어떻겠습니까. 그룹 오너는 물론 후계자들이 병원에 드나든 다는 사실 자체가 세어나갈 경우 근거 없는 루머가 퍼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력 못지않게 여러모로 신뢰할 수 있는 병원과 의사들이 선택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건강관리를 받던 회장들이 구치소에 수감되거나 검찰 조사, 재판 과정이 길어지면 제대로 된 관리가 힘들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요. 가끔은 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