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인사이드컷] 한정판의 달콤한 유혹

이보배 기자 기자  2014.05.21 15:03:08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제게는 1년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조카가 있습니다. 낭랑 16세 사춘기 수줍은 숙녀로 성장한 조카는 필리핀에 살고 있어 1년에 단 한 번만 한국에 들어오는데요. 제가 매년 5월을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는데요. 예년보다 조금 빠른 4월 말에 입국한 조카는 지난 9일 서울 저희집에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던 우리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 수 없었는데요. 다음 날 아침 일찍 홍대 뉴발란스 플래그샵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카 역시 제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서울 방문길에 올랐겠지만 홍대 뉴발란스 플래그숍에서 판매되는 '뉴발란스 999 체리블라썸' 운동화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뉴발란스 999 체리블라썸은 발매와 동시에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전국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 없는 제품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지난 10일 홍대 플래그샵 오픈을 기념해 1인당 2족 한정, 1000족을 판매한다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이 소식은 바다 건너 필리핀까지 전해졌나 봅니다.

   지난 10일 홍대 뉴발란스 플래그샵에서 1000족 수량이 추가 한정 판매됐다. 사진은 당시 체리블라썸 운동화를 구입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 선 사람들. = 이보배 기자  
지난 10일 홍대 뉴발란스 플래그샵에서 1000족 수량이 추가 한정 판매됐다. 사진은 당시 체리블라썸 운동화를 구입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 사람들. = 이보배 기자

한국에 들어온 조카는 플래그숍 오픈 날짜만 손잡아 기다렸고, 드디어 홍대에 입성하게 된 것이죠. 이날 오전 9시께 도착했지만 체리블라썸을 구입하기 위해 홍대를 찾은 인파는 대단했습니다. 꼬불꼬불 길게 늘어선 줄은 이미 매장과 한참 떨어진 곳까지 이어졌습니다.

간간히 일본어, 중국어도 들리는 걸 보니 해외에서 제품 구입을 위해 온 관광객까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그냥 그런 운동화인데 인기가 대단한가 봅니다.

'한정판'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제품 발매에 앞서 판매부수를 미리 정해 소장가치를 높이는데요. 문제는 요즘 한정판 마케팅이 많아지는 바람에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 지난 10일 제 조카는 체리블라썸 운동화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션수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조카가 그러더군요.

"이모 이거 15만9000원인데 지금 인터넷에 20만원에 올라왔어. 우리도 좀 더 사서 되팔 걸 그랬나?"

실제 온라인 중고 매매 거래 사이트나 블로그, 카페 등을 살펴보니 체리블라썸 판매글이 눈에 띄었는데요. 순수하게 사이즈 교환을 원하는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가(15만9000원)에 5만~10만원 상당의 프리미엄을 얹어 판매한다는 글이었습니다.

'한정판'이기에 가능한 프리미엄 가격인 것인데요. 이 때문에 실제 한정판 마니아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체리블라썸이 처음 판매됐을 당시 한정판이고 추가 입고가 없다는 말에 중고사이트에서 웃돈을 얹어 구입했는데 다시 재발매되는 것을 보니 기운 빠진다는 것이죠.

한정판 마니아들은 '한정판'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구입에 실패하면 쿨하게 인정하고, 구입에 성공한 다른 마니아들에게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정'이 없는 '한정판 마케팅'이 늘어나고, 실제 제품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구입에 성공해 높은 가격에 되파는 리셀러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한정판은 그 제품의 희소성을 제대로 알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의 품속에서 빛나는 가치를 뽐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