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으로 지난 3월24일 문을 연 'KRX금시장'이 설립 2개월 차를 맞았음에도 여전히 표류하고 있습니다. 세금계산서 없이 사고파는 이른바 '무자료금 거래'가 만연하면서 거래량 자체가 적기 때문인데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설 1개월째인 지난달 23일 기준 KRX금시장에서 거래된 금은 총 83.9kg, 거래대금은 37억5000만원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약 3.6kg이 거래된 셈인데 당초 일평균 거래량이 10kg 수준일 것이라고 추정했던 당국의 기대가 보기 좋게 꺾인 겁니다.
거래가 적으니 개장 초 뜨거웠던 관심도 시들해진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금융투자업계에서 야심차게 기치를 올린 KRX금시장이 어쩌다 애물단지가 되기 일보직전일까요. 막상 이유를 들여다보면 정말 단순합니다. 현재 KRX금시장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손해 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씨가 급전이 필요해 아들 돌반지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A씨가 가진 돌반지의 도매 시세가 200만원이라 치면 시세의 99%인 198만원이 A씨가 받을 수 있는 적정 가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는 '착한' 업자들은 개인으로부터 금을 살 경우 부가세 10%를 내야 합니다. 이에 비해 일명 '어둠의 경로'에서 거래하는 무자료상들은 부가세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당연히 무자료상들은 A씨에게 가격을 더 쳐줄 수 있습니다.
귀금속상에서 금을 살 때도 무자료상을 이용하는 게 이득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합법적인 자료상들이 개인에게 사들인 금을 되팔 때 본인이 부담한 부가세 10%에 마진 2%를 더해 파는데요. A씨에게서 198만원에 사들인 금이 시중에 다시 팔릴 때는 매입가의 111%인 222만원짜리 가격표가 붙는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무자료상의 경우 처음부터 부가세만큼 매입가격을 더 쳐주고 109% 수준에 판매가를 맞춘다고 합니다. 결국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이득을 보려면 무자료상에게 맡기는 게 합리적이니 당국이 골머리를 썩을 만도 합니다.
대부분 무자료금 거래를 하려는 이들은 갖고 있는 돌반지나 금목걸이를 처분하려는 개인입니다. 현재 KRX금시장 참여자의 절반 이상인 51%가 개인투자자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만큼 금 거래에 적극적인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이 고이고이 '싸 모신' 고금(古金)은 660~720톤 규모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104톤에 비해 7배 가까이 많다고 합니다. 결국 이 막대한 금들을 시장에 올리지 못하면 KRX금시장이 고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다행히도 거래소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개인이 보유한 '고금'을 금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KRX금시장에서는 순도 99.99%의 순금바(bar)인 '금지금'만 거래할 수 있습니다.
'고금'으로 불리는 금붙이들은 시중 귀금속상이 사들여 목걸이나 열쇠 같은 '정련금'으로 세공돼 판매되는데요. 수요가 집중돼 있고 유통 가능한 규모가 큰 정련금을 시장으로 끌어와야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빠를 경우 연말쯤이면 개정안이 마련돼 내년부터 고금(정련금)의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개정안 이전에 시중에 뿌리박힌 무자료금 거래부터 완전히 소탕하는 게 순서지만 말입니다. 원칙과 신뢰를 지킬수록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로운 현실에서 뒤늦게나마 당국이 얼마나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