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데이비드 윌리엄스가 글을 쓰고 토니 로스가 그림을 그린 '할머니는 도둑'의 주인공 벤은 금요일 밤을 너무너무 싫어한다. 금요일을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로 정한 벤의 부모님이 벤을 할머니 집에 맡기고 외출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할머니와 하룻밤을 보내야 하다니, 벤 입장에서는 끔찍할 만도 하다. 게다가 벤과 할머니는 취향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지는 못하겠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루는 참다못해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 집에 있기 싫으니 당장 데리러 와 달라'고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버릇없이 굴지 말라고 혼만 났다. 심지어 엄마 아빠와 통화한 내용을 할머니가 엿들은 것 같아 마음이 꺼림칙해지기까지 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가족이지만 취향은 전혀 다를 수도 있는 법. 누가 이런 사실을 모르리. 그럼에도 우리는 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하기를, 함께하기를 바랄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 왜기는 왜겠어. 사랑하니까 함께하고픈 거지. 그래서 벤의 할머니는 벤에게 양배추로 만든 각종 음식을 먹이려 하고, 함께 게임도 하자고 한다. 벤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댄스스포츠를 벤도 좋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벤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시하고 다른 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 답답하기만 하다.
필자의 아버지가 들려준 어린 시절 이야기,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할머니와 단둘이 목욕탕에 갔다고 한다. 할머니가 큰아들도 제쳐 두고 작은아들인 필자의 아버지만 데리고 목욕탕을 간 데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었다. 다른 자식들보다 특히 아버지를 아끼셨던 할머니께서 아버지와 단둘이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에 맛난 음식을 사 먹이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아버지는 목욕탕을 가는 날이면 할머니와 함께 중국집에 들러 탕수육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어떤 자식보다 아버지를 아끼셨던 할머니의 특별한 사랑,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아버지의 자기 자랑이 섞인 이야기려니 생각하며 듣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다.
아버지는 목욕탕을 다녀오는 날마다 울고 떼를 썼다는 것이다. 왜냐고? 아버지는 탕수육을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자장면이 먹고 싶은데, 자장면은 안 시켜 주고 먹기 싫은 탕수육만 시켜 주는 어머니가 야속했다는 것이다. 먹고 싶다는 건 안 사주고 먹기 싫다는 건 자꾸 먹으라고 하니,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울고 떼를 쓸 만큼 이해가 안 가고 속상한 상황이었을 터이다.
필자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상대방에게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면 아버지가 들려준 할머니의 탕수육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먹고살기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때마다 고기를 챙겨 먹이시려 했던 어머니의 사랑이야 어느 누구에 비할 수 없는 큰 사랑이었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기에 기쁨이나 행복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섭섭함과 몰이해로 기억에 남아 버린 것이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하는 것. 소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가장 어려운 일이지 싶다.
최영은 독서칼럼니스트 / 번역가 /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