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숙제했니?" 퇴근하며 아이 얼굴 보면 빠지지 않고 이 말을 물어본다.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도 내가 던지는 이 질문에 아이는 대개는 입을 삐죽거리며 시선을 피한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숙제를 안 했다는 것을….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낸다면 잔소리를 할 일이 없겠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해야 할 일'보다도 '하고 싶은 일'에 먼저 마음을 뺏긴다. 문제집보다는 TV 리모콘에 손이 먼저 가고, 책 보다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다. '스스로' 하는 일은 부모가 걱정하는 일뿐이니, 부모와 아이는 언제나 씨름 중이다.
누군가 '잔소리'를 정의하기를 '맞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는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니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이고 △듣는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말'이니 기분 좋게 들을 수 없는 말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누구도 기분 좋은 사람은 없는 말 △감정 상하는 것만큼 별 효과도 없는 말 △그런 줄 알면서도 참기 힘든 말. 그 말이 잔소리다.
별 실효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사람 입 아프고, 듣는 사람 귀 따가운 그 말을 자꾸 반복하게 되면서 아이와 부모는 씨름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좋은 방법은 없을까?' 참아도 보고, 말의 표현법을 바꿔 봐도 포장지만 바뀌었을 뿐 내용물이 똑같기에 여전히 뱉어내고 나면 찜찜한 후회만 남는다.
남자아이 키우는 집은 요즘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할 테지만 우리집도 아이가 게임에 재미를 붙인 뒤로 걱정이 태산이다. 아이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것도 모자라 핸드폰을 뒤져 게임 정보를 찾고 TV에서 남이 하는 게임을 지켜보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뭐가 재미있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지만 아이는 눈빛을 반짝이며 틈만 나면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 그 열정을 다른 데 쏟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아이는 다른 것에 시큰둥하다가도 게임만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지켜보는 나로서는 걱정이 태산이니 아이가 게임에 정신을 파는 만큼 나도 잔소리가 늘어간다.
아이 학원을 알아보러 상담을 갔더니 상담하는 선생님이 내게 던지는 말이 가히 충격적이다. "아이와 씨름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부모님은 백전백패입니다. 싸우지 마세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은 가지셔도 잔소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에게는 격려만 해주세요. 씨름은 학원에서 하겠습니다."
귀가 솔깃했다. '아~ 잔소리를 안 하고 아이와 실랑이를 안 해도 되겠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이겨보려고 하니 씨름이 되는 거였어. 이제 착한 엄마로 남을 수 있겠군. 악역은 학원에서 맡아준다니 이 얼마나 가뿐한 제안인가?'
이 생각을 하며 아이를 힐끔 보니 겁먹은 표정이다. 하긴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겁나는 말이겠는가? 부모는 호시탐탐 관심을 가지고 체크하고, 학원은 아이와의 '씨름'에서 백전백승하겠다는 각오를 벼르고 있으니 아이는 그 사이에 끼어 숨이 턱턱 막힐 게다.
듣기 싫다고 칭얼거리며 징징거려도 아이는 부모의 잔소리 그 밑바닥에 사랑이 깔려 있음을 느낄 것이다. 겉으로야 툴툴대지만 돌아서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한 자락이라도 '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리지' 이런 믿음이 깔려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끈끈한 잔소리마저 이제 부모는 학원에게 역할을 맡겨도 된다고 한다. 부모로서는 그만큼 신경전을 덜할 수 있으니 당장은 솔깃한 제안처럼 들리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효율성을 따지고 그래서 각자 잘 하는 전문 분야를 하자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부모로서 아이와 갖고 있는 '끈' 하나를 다른 이에게 넘겨버린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잔소리하는 선배, 잔소리하는 부모, 잔소리하는 선생님이 줄어가고 있다. 내가 듣기 싫으면 모두 도매금으로 '잔소리'로 매도하는 분위기다 보니 이 눈치 저 눈치 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귀 막고, 입 막고 눈 막고 사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말을 아끼게 되는 것이다.
약이 되는 잔소리도 분명 있을 텐데 잔소리하는 사람치고 좋은 대접받기 어렵다보니 점점 잔소리하는 사람이 줄어가는 듯하다. 들을 때는 당장 언짢아도 뒤돌아 생각하면 그 밑에 나를 아끼는 마음, 깔려 있는 그 애잔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잔소리가 있다.
당장은 잔소리 같지만 돌아보면 '참소리'인 말들. 그 말들이 나를 키워냈음을 인정하는 나로서는 아이와의 씨름을 남에게 넘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구수한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방희조 독서칼럼리스트 /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연구원·전문강사 / 전 KBS·MBC 방송작가 / '일하는 학교' 체험적 글쓰기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