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기자 기자 2014.04.03 17:37:18
[프라임경제] 불황에 시달리는 금융투자업계가 '출구 없는 터널'을 헤매고 있지만 '맏형' KDB대우증권(이하 대우증권)의 고단함은 유독 독해 보인다. 전임 임기영 사장 재임 당시 터진 중국고섬 사태는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소송전에 얽혀 있고 올해 감독기관 중징계를 연이어 맞으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악재가 겹치면서 실적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최근에는 동업자인 타 증권사들로부터 연이어 매도(를 뜻하는)리포트를 받아드는 굴욕도 당했다. 뿐만 아니다. 김기범 사장이 지난 2월 본사 영업부문의 동기부여를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계약직 전환 작업은 노동조합의 반발로 1개월 만에 사실상 철회됐다.
겉으로는 '올해 추가로 계약직 전환은 하지 않는다'는 노사 간 합의지만 김 사장의 임기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만약 김 사장이 내년 연임에 실패할 경우 사장(死藏)될 가능성이 높다.국내 '톱3' 증권사로 꼽히던 대우증권이 맏형의 위용을 찾는 과정은 험난해 보인다.
◆작년 당기순이익 업계 37위 '굴욕'
당장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는 실적개선 이후 주가회복이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따르면 대우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29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주가도 부진하다. 유상증자 이전인 2011년 2만6000원대 후반까지 올랐던 회사 주가는 지난달 21일 장중 7950원까지 곤두박질쳤다가 최근 8000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김기범 KDB대우증권 사장. ⓒ KDB대우증권 |
갑작스러운 실적 부진은 중국고섬 사태 처리비용을 비롯한 일회성 손실 때문이었다.
대우증권 측은 "중국고섬 관련 350억원, STX팬오션과 경남기업 관련 손실이 각각 281억원, 137억원 등 예전부터 누적됐던 일회성 손실이 실적 악화의 주범이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국내증시의 거래대금과 거래량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브로커리지 수익 비중이 크고 비용절감 효과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혔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작년 12월 결산에서 대우증권 순영업수익비율 중 브로커리지 비중은 48.4%로 절반에 육박했다.
이를 근거 삼아 최근 한화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달 21일 한화투자증권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개인투자자 매매 빈도가 낮아진 만큼 회사의 펀더멘털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1만원에서 6800원으로 하향조정하고 '매도(Sell)' 의견을 냈다.
이 증권사 윤태호 연구원은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수익구조를 갖고 있지도 않고 앞으로 실적이 개선될 조짐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며 "주가가 바닥을 다지고 있지만 추가 하락해도 이해가 되는 벨류에이션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윤 연구원은 또 "업계 전체적으로 판관비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우증권은 오히려 전분기 보다 12.9%, 지난해보다는 10% 이상 늘었다"며 "자구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나흘 뒤 교보증권은 '1등 분야가 없다'는 한 마디로 대우증권을 평했다. 전통의 강자로 다양한 부문에 경쟁력은 있지만 딱히 특장점이 없다는 얘기다. 교보증권은 신규로 1만원의 목표가격과 투자의견 '보유(Hold)'를 제시했다. '매도' 의견에 인색한 국내 리서치업계에서 '보유'는 사실상 매도로 통한다.
이 증권사 박혜진 연구원은 "IB(투자은행)와 리서치, 상품운용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췄고 풍부한 자기자본을 기반으로 해외진출과 WM(자산관리)으로 사업모델을 전환한 것 등 수익률 다각화에서는 최적의 구조"라면서도 "1등 분야가 없는 것은 지속적인 디스카운트(평가절하) 요인"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는 26일 대우증권에 대해 '매수' 의견은 유지했지만 목표주가는 1만1000원에서 1만원으로 낮춰 제시했다. 이 증권사 손미지 연구원은 "부진이 길어지고 있고 과다자본 이슈를 해결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대우증권 측은 이 같은 비판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화증권은 매도 리포트를 회사 차원에서 강권하는 분위기고 다른 리포트들도 대부분 정확한 리서치나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며 "기본적인 수치 조차 틀린 부분이 많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기 내내 목 조른 '중국고섬 망령'
현재 대우증권의 최대 악재는 단연 중국고섬이다. 2011년 3월 터진 중국고섬 사태는 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기범 사장과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KDB대우증권 CI. |
투자자 550명은 한국거래소와 대우증권, 한화투자증권, 한영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소송 만 3년 만인 올해 1월에야 1심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원고 일부 승소였다.
법원은 대우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들에게는 면죄부를 줬지만 대우증권은 대표 주관사로서 상장사의 회계 상황을 적절히 검증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물었다. 판결에 따르면 대우증권에게 공모주 투자자 125명이 제기한 손해배상금 62억원 중 50%인 31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올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고섬 소송과 관련한 최대손실 가능 금액은 248억3100만원으로 추산됐다. 원고는 판결 내용이 불만족스럽다며 항소했다.
더 답답한 것은 금감원과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로부터 받은 중징계다. 앞서 증선위는 지난해 10월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했고 금감원도 지난달 12일 대우증권에 대한 기관경고 처분을 확정했다.
금감원 징계로 대우증권은 최근 국민연금 거래증권사에서 완전히 빠졌다. 국민연금의 기금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427조2000억원으로 압도적이다. 기관투자자를 모시기 위한 법인영업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가장 큰 고객이 이탈한 것이다.
또 앞으로 3년 동안 대형IB 업무확대를 비롯한 신규 사업 진출이 금지되고 최대주주 자격도 제한된다. 헤지펀드 운용을 위한 자회사 설립도 할 수 없어 사실상 '글로벌 IB 도약'이라는 사업목표를 완전히 수정해야할 상황이다.
◆김기범式 구조조정, 노조 벽에 좌절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김 사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본사 영업부서 계약직 전환 작업은 도입 1개월 만에 사실상 철회됐다. 당초 본사 과장급 이상 영업직원에 한해 170여명 규모로 성과급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대상 직원 대부분이 거절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졌고 본사 로비 시위로까지 비화되자 김 사장은 이자용 노조위원장과 협상을 벌였고 지난달 21일 합의는 성사됐다. △올해 계약직 추가 전환은 없으며 △내년 이후에는 노조에 사전 공지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회사 측 관계자는 "이미 다른 증권사들은 2008년부터 도입된 제도가 성과보수체계인데 유독 사장님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타이밍이 좀 나빴던 것 같다"며 "본사 영업부서면 '선수'들만 모인 곳인데 상식적으로 잘하는 선수가 비싼 연봉 받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1월 한 직급에서 7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 한해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업계 평균보다 3배 정도 많은 1인당 최대 30개월치 봉급을 위로금으로 제시했지만 신청자는 30명 정도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김 사장은 인력감축 대신 조직개편과 해외파견으로 조직정비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다소 미미하다.
한편 최대주주인 산은금융지주가 지난해 홍기택 회장 체제로 바뀌면서 김 사장의 사퇴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었다. 금융투자업계에는 김 사장이 사임 후 연말에 치러지는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 도전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김 사장은 지난달 25일 정기주주총회를 무사히 넘기며 잔여 임기를 사실상 보장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부사장과 본부장 이상 임원 36명이 무더기 사표를 낸 것을 두고 일각에서 '산은금융지주가 김 사장 유임을 전제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주문한 게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