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스포츠칼럼니스트 기자 2014.04.01 19:38:20
[프라임경제]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 편파판정과 관련, 우리 빙상연맹이 뒤늦게 정식 제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회장 김정행)와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 김재열)은 지난 3월21일(이하 한국시간) 국제빙상경기연맹(이하 ISU)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김연아 선수의 2월21일 경기가 있은 후 정확히 한 달 만의 일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사이타마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선수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ISU제소는 대회가 끝난 후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내용이 대회가 열리던 일본 현지에서 이슈화되어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대회를 참관 중이던 ISU의 오타비오 친콴타 회장은 "아직까지 한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받은 내용이 없어 답변할 수 없다"고 답하며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증거제시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정식 제소의 움직임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늦게나마 정식으로 제소를 해서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태가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난 마당에 뒷북을 치는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한편으론 이러한 움직임이 장차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려는 김연아 선수의 앞길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 3월30일을 끝으로 세계선수권대회가 막을 내렸으니 대회 종료 후 ISU제소를 약속한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언제 정식으로 제소를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식 제소가 이루어지면 ISU 차원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사위원회가 꾸려질 것이고 러시아빙상연맹도 그 위원회에 참여하게 될 것인데, 그들이 순순히 편파판정을 인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오히려 판정이 정당했다며 김연아 선수와 한국을 승복할 줄 모르는 패자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때문에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번 사태에서 김연아 선수나 한국만이 피해자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이를 피겨스케이팅의 채점방식, 심사위원 선정방식 등 시스템의 문제로 초점을 맞추어 우리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나 IOC도 피해자라고 인식시키는 고도의 전략적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명분을 가지고 서로 윈-윈 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소치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 속의 힘 있는 러시아를 외쳤다. 금메달 리스트를 배출하고도 판정시비에 휘말려 체면이 서지 않는 러시아의 입장도 감안하여 시스템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모양을 만들어 주면, 러시아도 떨어진 위신을 제고시킬 기회로 인식하고 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
2018년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은 협상 조건을 쥐어주는 것이다.
IOC의 협조도 이끌어 내야 한다. IOC는 최근 하계 동계올림픽에서의 편파판정으로 위상이 많이 떨어져 있다. 이번 사태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IOC의 떨어진 위상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메시지 전략을 펼쳐야 한다. 다시 말해, 위기가 기회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고도의 전략적인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협상 전문가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필수다. 관련 기관이나 체육계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협상에 있어서 전략적인 접근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사전에 시나리오를 짜서 철저히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
협상이란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비난 일색으로 울분을 토로하는 접근법으로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환경, 즉 명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힘에 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면서도 강력한 세력들을 우리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외교력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적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협상의 묘미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잡음 없는 성공적인 대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또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많은 선수들이 앞으로 실력에 의한 정당한 성과를 획득하기 위해라도, 우리는 글로벌 스포츠계를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외교력을 갖추어야 한다.
강력한 외교력의 첫걸음은 바로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고도의 협상력을 가진 인물들을 영입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계도 이제는 내부에서만 인재를 찾으려 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외부의 인재도 과감히 등용하는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
김재현 스포츠칼럼니스트 / 체육학 박사 / 문화레저스포츠마케터 / 저서 <스포츠마케터를 꿈꾸는 당신에게> <붉은악마 그 60년의 역사> 외 / 서강대·경기대·서울과학기술대 등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