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삼성그룹이 31일 '3대 모태 기업' 중 하나인 제일모직과 삼성SDI의 합병을 전격 발표했다. 이사회 결의에 따라 삼성SDI는 신주 발행을 통해 제일모직 주식을 1:0.425의 비율로 교환하는 흡수합병을 오는 7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합병가액은 삼성SDI 15만1762원, 제일모직 6만7162원이다.
삼성SDI는 앞서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 이후 주가가 급락했고 최근까지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제일모직 역시 '역사적 저점'이라고 평가될 만큼 주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두 기업의 합병 결정이 대형재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오전 합병 소식이 전해진 직후 두 회사의 주가는 들썩였다. 이날 시장에서 삼성SDI는 6.62%, 제일모직 역시 5.75% 치솟아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지난 28일 거래량이 18만주에 못 미쳤던 삼성SDI는 이날 10배 가까운 196만주 이상으로 폭증했다. 제일모직도 52만주 정도에 그쳤던 거래량이 310만주 넘게 급증하는 등 관심을 받았다.
◆"2차전지 부문, 탄력 받을 것"
이번 합병 효과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먼저 합병이 마무리되면 연매출 10조원, 자산규모 15조원에 육박하는 거대 소재 기업이 탄생하는 만큼 규모면에서 업계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 신성장 목표로 내세운 '초일류 친환경 에너지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두 회사가 공유하게 될 시너지가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삼성SDI의 주력사업이 될 2차전지 분야에 제일모직이 보유한 배터리 분리막 기술을 자연스럽게 융합할 수 있게 됐다. 삼성SDI로서는 '역사적 저점'으로 하락한 제일모직을 흡수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소재 부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신수종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와 ESS 부문은 상당한 성장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합병 발표 이전을 기준으로 자동차용 중대형 전지의 올해 매출 추정액은 3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장기 성장 동력으로는 청신호다. 올해 2분기부터 BMW를 비롯해 크라이슬러, 폭스바겐 등이 잇따라 전기차 상용화에 나서는 만큼 매출 증가 효과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올해 중대형 전지 매출이 전년보다 3배 넘게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2분기부터 BMW와 크라이슬러, 폭스바겐이 잇따라 전기차 상용화에 나서는 만큼 공급처가 다양해지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당장 중대형 전지가 이익 면에서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회사의 전지 사업은 앞으로 장기적인 성장에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과 경쟁하고 있는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시스템) 시장에서도 이번 합병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ESS는 전기 수요가 적고 요금이 저렴한 심야에 전기를 저장했다가 주중에 꺼내 쓸 수 있도록 한 대형 배터리 시스템이다.
네비건트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ESS 시장 규모는 2010년 2원원대에 그쳤지만 오는 2020년에는 47조원으로 20배 이상 팽창하고 2030년에는 120조원대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SDI는 2013년 4%에 불과한 중대형 배터리와 ESS 부문 매출을 오는 2020년까지 58%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목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BMW의 전기차가 내달부터 북미, 아시아로 판매가 확대될 예정이고 ESS도 최근 일본 중심으로 태양광 모듈시장 상황이 좋아 꾸준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삼성SDI로서는 대형전지 출하량이 급증하면서 2017년 이후부터는 본격적 이익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일모직, 신사업 부진 M&A로 돌파
이런 가운데 제일모직은 흡수합병이 마무리되는 오는 7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4년 설립돼 삼성물산,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그룹의 3대 모태 기업으로 꼽히는 제일모직은 직물사업으로 기반을 다졌고 1980년대 패션, 1990년대 케미칼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2000년대 이후 전자재료 사업에 뛰어들어 반도체 신규소재, 그중에서도 OLED 소재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OLED 소재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해 12월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면서 계절적 비수기를 상쇄해줄 먹거리가 사라진 것도 악재였다. 제일모직으로서는 이번 흡수합병으로 신사업 부문의 부진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황유식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케미칼과 편광필름 부문에서 실적이 부진했고 최근까지 올해 투자계획 등 사업 로드맵 정립이 명확하지 않아 우려를 샀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이달 초 삼성SDI로의 흡수병합을 극비리에 조율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전자소재 부문에 집중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 제일모직의 강점으로 꼽히는 든든한 '캡티브 유저(Captive User·그룹 내 관계사)'가 등장한 것이다.
한편 이번 합병으로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으로 연결되는 수직계열화가 가능해진다. 제일모직 최대주주는 현재 지분 11.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고 뒤를 이어 한국투자신탁운용이 7.3%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합병이 완료되면 삼성전자가 13.5% 지분율로 10.5%인 국민연금을 제치고 최대주주가 된다.
이런 까닭에 재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내 전자·금융 계열사를 진두지휘하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건설·중화학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각각 승계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