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6.4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인 펀드'가 주요 선거 키워드에 오르고 있다. 후보자들이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지지자에게 일정액을 투자받은 뒤 선거가 끝나면 투자 원금에 이자를 더해 갚는 것이 정치인 펀드다. 단기간에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어 정치자금 조달의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 펀드가 유사수신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펀드 모집을 위해서는 자격을 갖춘, 등록된 사업자에 한해 엄격한 약관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선거 출마자의 경우 유사수신행위는 말 그대로 불법이다.
◆득표율 15% 넘으면 법정선거비용 전액 지원
정치인 펀드는 유시민 정의당 대표가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로 출마하며 '유시민펀드'를 결성한 것이 시초가 됐다. 유 대표는 단숨에 41억원을 모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2011년 10.26 재보선에서 '박원순펀드'를 결성해 38억5000만원의 선거자금을 47시간 만에 모은 바 있다.
정치인 펀드는 2012년 4.11 총선과 18대 대선에서도 화제였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200억원 규모 '문재인 담쟁이펀드'를 출시했고, 현 대통령인 박근혜 후보 역시 250억원에 달하는 '박근혜 약속펀드'를 내놨다. 이자율은 각각 3.09%, 3.10%였으며 모두 사흘도 안 돼 목표금액을 채웠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도 정치인 펀드는 줄줄이 출시될 전망이다.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예비후보를 필두로 박성호 천안시장 예비후보, 이정운 광양시장 예비후보, 고희범 제주도지사 예비후보 등 여러 인사가 본인의 이름을 건 펀드를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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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18대 대선 후보는 중도 사퇴하면서 3400여만원의 이자 비용을 개인 돈으로 충당해 투자자들에게 상환했다. ⓒ 프라임경제 |
문제는 모든 펀드가 성공적으로 상환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2012년 4.11 총선에 출마했던 강용석 전 의원은 이자율 연 6.00%, 2억원 규모 펀드를 출시해 5시간 만에 투자자 유치에 성공했으나 득표율이 4.3%에 그쳤고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면서 상환에 실패할 뻔 했다.
후보자가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관위로부터 법정선거비용이 전액 보전되고 10% 이상일 경우 반액이 보전된다. 그러나 그 이하는 선거비용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강 전 의원은 약속된 상환 날짜보다 한참 뒤에야 사비를 털어 투자자 357명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줬다.
또 안철수 의원도 18대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안철수 국민펀드'를 개설해 3만121명의 투자자에게 135억2000만원을 모금했지만 중도 사퇴하면서 펀드도 공중분해됐다. 안 의원은 3400여만원의 이자 비용을 역시 개인 돈으로 충당해 투자자들에게 상환했다.
◆고이자율로 홍보, 책임은 등 떠밀기
정치인 펀드는 1인당 1회 500만원, 1년에 2000만원 제한이 있는 정치후원금과는 달리 투자금액에 제한이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 있고 '당연히 돌려받는 돈'으로 여기는 탓에 투자금이 몰리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한 후보자가 상환 능력이 없을 경우 아예 돈을 떼일 수도 있다. 정치인 펀드는 은행법에 따른 허가 상품이 아니라 개인 간의 금전거래, 차용계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법적으로 이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없다.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니면서 특정 이자율을 앞세워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으는 유사수신행위에 정치인 펀드가 해당되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불특정다수 대상의 홍보를 하고 '펀드' '신용' '캐피탈' 등 금융업 유사명칭을 쓰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대부분 정치인 펀드가 'OOO펀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도 불법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정치인 펀드는 개인과 개인과의 거래이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채권자가 유권자에게 돈을 빌리고 합당한 통상이자를 준다면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펀드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이익을 얻을 수도, 손해를 볼 수도 있어 득표율 15% 미만인 후보자가 상환능력 부족으로 투자자가 손해를 보게 되면 이 또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후보를 신중히 판단한 후 펀딩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금융위원회의 판단은 사뭇 다르다. 선관위가 정치자금법으로 정치인 펀드를 확실히 규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선관위에서 정치자금법으로 확실히 규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현재 유사수신행위에 관해서는 법원이 행위, 행태, 목적,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판단하고 있는데 정치인 펀드는 영역 자체가 달라 금융위가 나설 수 없는 문제"라고 답변했다.
이와 함께 이 관계자는 "피해자 예방을 위해 1차적으로 선관위가 확실히 판가름해줘야 한다"며 "투자자 보호법이 부재인 만큼 피해자를 막기 위한 법 제정도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최근에는 3% 내외로 출시되던 정치인 펀드가 연 6%라는 고이자율로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는 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 4%보다 2%가량 높고 채권형 펀드보다 1%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반면 대여기간은 3개월이어서 실제 이자는 1.5% 정도로 수익률이 크지는 않다.
이와 관련 자본시장연구원 A연구원은 "정치인 펀드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아 전문가들도 다루지 않는 영역"이라며 "고이자율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있는 상품인지 증명된 바가 없기 때문에 절대 투자를 목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