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훈식 기자 기자 2014.03.27 15:55:45
[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 노사가 '통상임금 확대'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시킨 반면 재계 2위 현대차는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논란은 세칙 단 하나의 조항을 두고 노사 간 서로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5일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윤여철 현대차 노무총괄 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상임금 확대'와 관련해 "법대로 대응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따르면 현대차의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있다"며 "내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법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노조가 장기파업으로 나올 경우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러한 사측 발언에 대해 현대차 노조 측은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한 만큼 임금과 관련한 각종 시행세칙 등 회사 측의 일방적 해석을 바로 잡고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시점을 앞당길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사측과 노조의 법적 해석에 있어 어떠한 문제가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지 대법원 판결과 고용노동부 지침, 현대차 상여금 지급 시행 세칙에 대해 살펴봤다.
◆사측 주장, 勞動 지침에 탄력
대법원은 작년 12월18일 그간 통상임금 판례와 고용노동부 예규(1988년 제정) 사이의 수차례 제시된 해석상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종합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내놨다.
현대차 사측 주장은 노동부가 제시한 '지침'에도 '고정성 결여 사례'로 명시되면서 막강한 설득력을 갖게 됐다. 사진은 윤여철 부회장과 고용노동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 프라임경제 |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한 정의된 '통상임금'은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를 제공하면 확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다. 여기에 복리후생금품과 같은 각종 수당과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에 대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충족요건도 명확히 했다.
고용노동부도 이에 뒤질세라 지난 1월 이 같은 판결을 바탕으로 하는 '통상임금 노사 지도지침'을 발표했다. 이처럼 사법부와 노동부가 힘을 합쳐 통상임금에 대한 뚜렷한 정의를 내리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다수의 대기업들은 하나둘씩 '통상임금 확대'를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전체적인 흐름을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2개월에 한번 100%의 정기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는 현대차 역시 명분상으로는 '통상임금 확대' 의무를 지녔지만, 이를 거부할 '히든카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히든카드가 바로 '현대차 상여금 지급 시행 세칙'에 명시된 6.4 '지급제외자(15일 미만 근무자)' 조항이다. 이 단 하나의 조항은 대법원이 요구하는 '통상임금의 고정성' 여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노사 간 갈등의 전제가 되는 있는 것이다.
우선 대법원에 따르면 '통상임금의 고정성'은 소정시간을 근무한 직원이 그 다음 날에 퇴직한다고 해도 근로 대가로 당연하게 확정 지급받는 최소한의 임금이다. 상여금이 정기성과 일률성을 충족하더라도 지급요건을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한정할 경우에는 '고정성 결여'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사측이 해당 정기상여금이 고정성 결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현대차가 지급하는 상여금은 '지급 제외자' 조항에 의거, 15일 미만 근무자에겐 제공하지 않는 '비고정적 성격'을 띄고 있어 통상임금에 제외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주장은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통상임금 노사 지도지침'에서도 '고정성 결여 사례'로 명시되면서 막강한 설득력을 갖게 됐다.
◆실현 불가능한 조항 "大法도 일할지급 때 인정"
노조 측은 사측 주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급 제외자 조항이 논란의 여지가 될 수는 있지만 '정기상여금의 고정성'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통상임금 확대' 문제는 윤여철 부회장의 강경책으로 인해 향후 노사 간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현대차노조 홈페이지 캡처 |
노조는 우선 현실적으로 지급제외자에 해당하는 대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현대차는 현재 상여금을 2개월 지급하고 있는데, 해당 기간 중 무려 45일 이상 유·무결이나 미승인결근, 조합활동무급, 사직대기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는 '퇴직자에 대한 예외' 규정세칙 6-5다. 이 규정은 '이상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기준 기간 중 퇴직한 자에 대해서는 실 근무일수에 해당하는 지급률로 상여금을 산정해 퇴직금 지급 시에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해당 규정에 따라 퇴직자들에게 정기상여금을 일할 지급하는 상황이다.
즉, 규정상 '상여금의 고정성'을 인정하고 실제로도 퇴직자에게 근무일수에 비례해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어 대법원이 판결한 통상임금 기준에 해당된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부가 제시한 지침에도 '15일 미만 근무 시 일할 계산 지급할 경우 고정성이 인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15일 미만 근무한 자'라는 규정은 현대차에 입사해 15일 미만 근무하고 퇴직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된 예가 한 번도 없었다"며 "모든 노동자가 일할지급으로 상여금을 받고 있어 문제 소지가 없고 사측의 자의적 해석으로 법적인 공방이 예상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차의 주장은 실현 불가능한 '지급제외자' 조항 하나로 전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난이다. 여기에 '상여금 세칙'마저 노사 간 합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내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현대차 노무를 담당하고 있는 윤 부회장은 2012년 노조원 분신 사망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다시 복귀한 인물로, 노조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그는 복귀 후 최대 과제였던 임금단체협상 당시 "나는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다. 지금 죽어도 호상"이라며 "죽는다는 각오로 대처할 각오가 돼 있다"고 언급해 노조에게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윤 부회장은 이번 통상임금 논란에 있어서도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발언하는 등 강경책을 펼치고 있어 향후 노사 간의 협상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편 현대차 노조원 23명이 지난해 3월 회사 측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법원에 낸 통상임금 소송은 같은 해 11월 이후 진척이 없다가 최근 재판이 재개됐다. 지난 4일 변론기일이 지나갔고 다음 달 22일 속행한다. 과연 현대차 통상임금 소송 결과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