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인사이드컷] 친숙한 '비싼 땅굴' 뭉클한 '값진 땅굴'

하영인 기자 기자  2014.03.24 18:14:21

기사프린트

   기관사 없이 운행되는 신분당선 맨 첫 칸은 양쪽으로 나 있는 앞 유리창을 통해 터널 전경을 볼 수 있다. = 하영인 기자  
기관사 없이 운행되는 신분당선 맨 첫 칸은 양쪽으로 나 있는 앞 유리창을 통해 터널 전경을 볼 수 있다. = 하영인 기자

[프라임경제] 얼마 전 취재차 경기도 성남시 분당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전철 신분당선을 이용했는데요, 열차를 놓칠세라 아무 칸이나 타고 봤더니 평소 잘 타지 않던 맨 앞칸이더군요.

전철 속에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던 보통 때와 달리 이날은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평소 보지 못한 광경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처음 보게 된 전철 밖 광경이 신기해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신분당선 열차는 기관사 없이 무인운행됩니다. 종합관제센터에서 자동관리·통제하는 원격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승객들도 전철 첫 칸에 가면 앞 유리창을 통해 터널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보기 힘든 아주 흥미진진한 장면이지요. 
 
지금의 번듯한 모습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노고와 엄청난 재원이 투입됐을까요. 신분당선 전철의 총사업비는 약 1조5808억원으로 2005년부터 착공해 완공하기까지 6년여가 소요됐습니다. 제 시야 앞에 펼쳐지는 터널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아주 비싼 수많은 땅굴들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굴을 사람에겐 참 친숙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첨단장비로 만든 요즘 터널과 달리 사람이 직접 파서 만든 굴도 많이 있죠.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아주 의미 깊은 지하요새 땅굴이 떠오릅니다. 베트남의 '구찌터널'입니다.
 
베트남의 구찌 지역의 이 터널 덕분에 베트남전 당시 모든 요건이 열세였던 베트남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합니다. 
 
구찌땅굴은 주민들의 지혜가 담긴 곳으로 알려졌는데요, 1948~1954년 인도차이나전쟁 당시 프랑스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던 48km의 굴이었습니다. 그러다 1967년 베트남전이 발발해 구찌 주민들은 200km가량 터널을 더 파냈고 지하 3층·깊이 30m·면적 1만3000㎢에 달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2년여에 걸쳐 이 땅굴을 만들 때 사용한 도구가 오로지 호미와 바구니뿐이었다고 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 땅굴로 통하는 문이 여러 개였는데, 이 중에는 바닥이 쇠창살로 돼 있는 등 함정인 곳도 많았다고 합니다. 미군 공격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죠.    
 
입구는 가로세로 폭이 30cm·45cm에 불과해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들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A3용지(297mm·420mm)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터널 내부에는 수술실이며 학교며 각종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니 그저 대단할 따름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 땅굴은 생명과 독립, 부활을 가져다준 귀한 공간이었습니다. 곰이 동굴에서 긴 시간 버텨낸 뒤 사람이 됐다는 우리의 단군신화 이야기가 친숙해서인지 구찌터널 사연은 이래저래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