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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해부] CJ그룹 ①태동과 성장… '無에서 有'

이미지 변신 성공의 역사…오너 부재 '삐그덕'

이보배 기자 기자  2014.03.24 1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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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CJ그룹 1탄 태동과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CJ그룹(회장 이재현)은 창립기와 도약기를 거쳐 종합식품회사로 성장, 이를 발판 삼아 첨단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 삼성그룹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독자적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식품&식품서비스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의 4대 핵심사업군을 구축했다.

◆눈처럼 하얀 희망, 국산 설탕 첫 생산

CJ그룹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모태기업으로 1953년 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제지, 제당, 제약 가운데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한 제당사업에 뛰어들며 초석을 다졌다.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제당설비 설탕 시제품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는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의 모습. ⓒ CJ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제당설비 설탕 시제품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는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의 모습. ⓒ CJ
그해 11월5일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이 생산됐고, 이날이 바로 CJ그룹의 전신인 제일제당의 창립기념일이다. 이 선대회장은 사업이 나라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신념으로 경영에 임했다. 제일제당은 그가 꿈꿨던 사업보국 정신의 첫 발이자 모체였던 것.

당시 제일제당은 외국산 설탕의 절만 값에 설탕을 내놨고, 소비자들은 밀물처럼 몰렸다. 이렇게 자금을 모은 제일제당은 이후 제일모직과 제일합섬,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현재 삼성그룹의 축을 이루는 기업의 설립과 인수에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탕사업에 성공한 제일제당은 1958년 제분사업 진출, 1963년 조미료 국산화, 1979년 식용유 제조, 1980년 육가공사업 진출 등 1980년대 초까지 식품분야에서 꾸준히 사업영역을 확대해 왔다.

그런가 하면 이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 여사는 이 선대회장 사후 지분 15.6%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제일제당 지분과 맞교환했고 이어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선언한 제일제당은 1996년 5월 CJ그룹의 전신인 제일제당그룹으로 공식 출범했다.

◆고정된 이미지 탈피, 삼성과 '이별' 후 변신 성공

제일제당의 고정화된 이미지는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기도 했다. 국내 최대의 종합식품회사라는 고정된 이미지가 성장의 한계로 다가온 것. 그러나 CJ그룹은 한계 극복이 빨랐다.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지난 1995년은 CJ의 역사에 전환점이 되는 시기로 기억된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직접 미국을 방문, 할리우드 영화사 '드림웍스'와의 투자협상을 통해 2대주주로 참여하며 3억달러를 투자했다.

  종합생활문화를 선도하며 21세기 세계일류기업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제일제당그룹이 1996년 5월 첫발을 내딛었다. ⓒ CJ  
종합생활문화를 선도하며 21세기 세계일류기업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제일제당그룹은 1996년 5월 첫발을 내딛었다. ⓒ CJ
당시 재계에서는 설탕, 밀가루, 식용유 등 국내 최대의 종합식품회사로 알려진 제일제당의 사업 성격과 이미지로 볼 때 도박에 가까운 투자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CJ에서 분사한 CJ엔터테인먼트는 드림웍스의 아시아 배급권과 국내영화 투자를 통해 국내 영화업계 점유율 1위 회사로 급부상했다. 
 
이후 제일제당그룹은 식품회사의 이미지가 강한 기존의 이름으로는 영화·홈쇼핑·생명공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 생활문화기업'의 특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CJ그룹'으로 사명을 바꿨다.

특히, CJ그룹은 지난 2007년 9월 1일에는 투자와 사업의 분리를 통한 경영효율화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CJ주식회사의 사업부문을 별도 회사로 분리해 완전히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꾀한 것이다.

◆사업다각화 성공, 글로벌 문화창조기업으로…

설탕, 밀가루 생한 중심의 식품회사에서 출발한 CJ그룹은 현재 △식품&식품서비스 △바이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이라는 4대 사업군을 완성했고, 전통 내수기업에서 글로벌 문화창조기업으로 이미지 탈피에 성공했다. 이 같은 변신을 이루면서 삼성그룹과 분리 직전인 1995년 1조7300억원에 불과했던 CJ그룹의 매출은 지난해 약 28조5000억원으로 16배 이상 성장했다.

이 회장이 실질적 창업주라고 평가받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95년 드림웍스 투자 당시 이 회장은 "자동차, 철강, 중공업, 화학 등은 이미 국내의 다른 대기업들이 많이 하고 있다"며 "우리가 적어도 아시아 글로벌 넘버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업분야는 바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설탕, 밀가루 생한 중심의 식품회사에서 출발한 CJ그룹은 현재 △식품&식품서비스 △바이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이라는 4대 사업군을 완성했다. ⓒ CJ  
설탕, 밀가루 생한 중심의 식품회사에서 출발한 CJ그룹은 현재 △식품&식품서비스 △바이오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이라는 4대 사업군을 완성했다. ⓒ CJ
이후 CJ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초석이 된 드림웍스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의 멀티 플렉스 영화관을 설립했다. 공사가 한창이던 1997년, IMF 위기가 닥치기도 했지만 공사를 강행해 1998년 4월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에 국내 최초로 11개의 스크린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를 개관했다.

단관 중심의 영화관 시장에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를 도입하면서 1999년 3000억원 수준이던 한국 영화시장은 4배 이상 성장한 1조2000억원까지 커졌다.

CJ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극장 사업에 IT기술을 융합해 국내 최초로 IMAX, 3D 입체음향, 4DX 등을 선보이며 새로운 극장문화와 인프라를 창조하고 있다.

이 밖에 1996년 '39쇼핑' 인수로 시작된 신유통 사업부문은 국내 최대 규모 홈쇼핑업체인 'CJ오쇼핑'과 최대 규모 물류회사 'CJ대한통운'을 키워냈고, 전통 사업부문인 식품&식품서비스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진화해 세계에 우리음식을 알리는 '음식 한류'를 이끌고 있다.

CJ의 성장 역사는 '창조형 사업다각화'로 요약된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경제를 사실상 일찌감치 구현한 기업이라 자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에 시장이 없던 분야를 산업화해 관련 시장과 기업이 함께 커나간 의미 있는 성장의 역사라는 주장이다.

실제 CJ는 앞서 설명한 멀티플렉스 도입 외에도 국내 최초로 즉석밥 '햇반'을 만들어 취식 문화를 바꿨고, 빕스를 통해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패밀리레스토랑의 개념을 진화시켰다.

또 올리브영은 기존 시장과 차별화된 Health & Beauty 스토어로, 동네 골목상권을 해치지 않으면서 중소 제조업체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슈퍼스타K'는 대한민국에 오디션 열풍을 몰고 왔으며, 인기몰이를 톡톡히 한 '응답하라 1997' 등의 콘텐츠는 문화산업의 진가를 보여줬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이 회장 1심 실형 선고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승승장구하던 CJ에 지난해 초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수천억원 상당 비자금 조성과 세금 탈루 혐의로 검찰 압수수색과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된 것.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결과 지난 7월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12월 1심 재판이 시작됐다. CJ그룹의 성장기였던 1990년대 중·후반 이 회장이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 운영하면서 546억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회삿돈 963억원을 횡령, 569억원의 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다.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 CJ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 CJ
재판 도중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횡령액은 719억원, 배임액은 392억원으로 낮추고 징역 6년과 1100억원을 구형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국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일부 조세포탈 혐의를 제외한 대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지난 2월14일 이 회장에 대해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이 회장 측은 "비자금 조성 부분이 가장 아쉽다. 처음부터 따로 관리했고, 회사 목적으로 사용됐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갑작스런 이 회장의 구속수감으로 최고경영자(CEO) 공백 여파가 생기면서 CJ는 지난해 계획한 투자 목표 가운데 상당수를 진행하지 못했다. 실제 CJ제일제당이 추진 중이었던 중국과 베트남의 바이오 업체 인수건은 현재 중단된 상태고, CJ대한통운의 해외 물류업체 인수도 무산됐다.

CJ오쇼핑의 경우 해외 홈쇼핑업체 인수 계획이 지연되고 있으며, CJ프레시웨이의 중국 및 베트남에서의 식자재 및 급식시장 진출 역시 의사결정이 보류됐다.

1심 재판 결과에 따른 부담감 때문인지 이 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CJ그룹 3개 계열사 등기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주총에서 이 회장은 CJ E&M과 CJ오쇼핑, CJ CGV 등기이사직을 사퇴하면서도, CJ(주),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시스템즈 4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은 유지하게 됐다.

오너 부재에 이어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CJ의 도전이 잠시 주춤할 수 있겠지만 올해는 그룹 차원의 전략기획 수립 체계를 혁신해 조직의 효율과 실행력을 높이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