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보스턴의 한 수용소에 앤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인데다 어머니와 동생마저 연달아 죽자 그 충격으로 미쳐서 실명에 이르렀다. 수차례 자살시도를 한 끝에 급기야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된 앤에게서 삶의 희망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노(老)간호사인 로라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고, 로라는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줬다. 이와 같은 로라의 극진한 정성으로 앤은 점차 웃음을 찾아갔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으며, 2년 만에 정상인 판정을 받고 수용소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해서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게다가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에도 성공했다.
수술 후 어느 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게 됐고, 그녀는 자신이 로라에게 받는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가 바로 헬렌 켈러를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든 앤 설리번이다.
설리번은 삶의 극한적인 고통과 암흑을 경험했기 때문에 헬렌 켈러의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로라의 영향으로 기적과 같이 회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헬렌 켈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셜리번이 헬렌 켈러의 곁에서 48년 동안이나 함께했다고 하니, 헬렌 켈러를 향한 그녀의 사랑과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필자는 '일하는 학교'라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20세 전후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자기이해와 글쓰기'라는 수업을 한다. '일하는 학교'는 그들의 사회적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마련된 기관이다. 그곳에 온 대부분의 청년들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소외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처가 많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중이라고 고백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뭔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는 학생으로 지적받는 것이 싫었는데, 이곳에 오니 자신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갖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잠재된 가능성에 주목하며 저마다의 개성을 따뜻하게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그들에게 특별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과도한 억압이나 깊은 상처 때문에 노출하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이나 잠재된 재능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지금을 있게 한 과거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그들은 필자의 수업을 좋아한다. 이유는 필자가 자기네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필자는 단지 그들의 얘기를 놓치지 않고 잘 들어주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그들은 거기에서 감동받고 새로운 자신감을 얻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위에서 앤이 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족의 죽음과 실명으로 인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는 것에만 주목했고, 그녀를 치료와 감금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아무도 그가 왜 미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려 주고 그녀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못했다.
필자가 만난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뒀다는 사실에만 주목한다. 그리고 정규교육을 마친 학생들과 차별을 두는 데만 급급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모두 아프다.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해와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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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시선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 봐 주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위로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방희조 독서칼럼리스트 /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연구원·전문강사 / 전 KBS·MBC 방송작가 / '일하는 학교' 체험적 글쓰기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