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 자기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던 만큼 프라이버시 또한 높았던 A씨. 그는 8년여를 일하며 본인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었지만, 곧 임신·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 여성'이란 이름표를 붙여야 했다.
유복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편찮으신 부모님. 기댈 곳 없으나 자신의 아이에게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주고 싶었던 그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가슴 한편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복귀할 수 있노라고 본인의 능력을 과신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면접 보는 족족 턱없이 낮은 연봉을 제시하는 통에 A씨는 깊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그동안 쌓아온 경력은 몇 년 새 가치를 잃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일평생 가슴에 품을 '꿈'이냐, 무엇보다 소중한 '가정'이냐를 선택하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기만 합니다. 기특하게도 예쁘고 건강하게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당시 결정에 후회가 들진 않지만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분들이 많은 걸 알기에 가슴 아플 뿐입니다."
다시 사회에 나가 꿈을 펼치고 싶은 A씨.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경력단절 여성 모두 상황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힘없는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대한민국 여성은 생각처럼 약하지 않다. 경력단절 여성 대다수는 용기를 앞세워 재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다만 잘못된 인식은 그들을 사회적 약자로 만들고 있다.
여가부가 지난해 전국 25~29세 결혼·임신 또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5854명을 대상으로 경력단절 실태를 조사한 결과, 경력단절 여성 월평균 임금은 149만6000원이었다. 이는 경력단절 상태가 아닌 취업여성의 월평균 임금 204만4000원보다 54만8000원 적은 금액이다.
이뿐만 아니라 경력단절 이후 사무직 취업비중은 39.4%에서 16.4%로 줄어든 반면 서비스판매직 비율은 14.9%에서 37%로 늘었다. 아울러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20.0%에서 42.9%로 큰 폭 늘었지만, 대형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27.1%에서 9.9%까지 급감했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들을 위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여성가족부(장관 조윤선·이하 여가부)는 '시·도별 경력단절 여성 교육과정'을 확정하고 여성새로일하기센터와 폴리텍대학·직업전문학교 등에서 올해 1만4000명의 경력단절 여성에게 636개에 달하는 국비 무료 직업훈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경력단절 여성이 전문기술을 익혀 재취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본래 경력을 살리고 싶은 이들을 위한 도움은 찾기 힘들다. 회사 입장에서는 경력 높은 이직자가 넘치는 판국에 굳이 경력단절 여성을 우대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업체는 물론 국가에 큰 보탬이 될지도 모를 뛰어난 인재가 능력을 썩히고 있을지 모른다는 진단도 고려할 시점이다.
이런 이유로 '청년인턴제'처럼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년인턴제는 기업의 청년인턴 고용 장려를 위한 정책으로 청년인턴 인건비 50%를 최대 1년간 지원하며 인적·물적 부담을 줄여주는 인력지원사업이다.
더 이상 경력단절을 이유로 취업 취약계층이라고 그들을 판단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아울러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드는 것인 만큼 경력단절 여성들도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강한 마음으로 고된 풍파에 맞서길 바란다. 마침내는 '경력단절'이란 단어에 구속받지 않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